설악산 가을마중|─────── 까치놀
산행일시 : 2010년 9월23일 04:00- 14:44 (10시간45분)
산행코스 : 한계령-끝청-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산장-봉정암-수렴동대피소-영시암-백담사-용대리4km전 (27km)
비가 밟고 간 산 길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달려와 시야를 좁히라 하고..한걸음 한걸음에 가는 가는 뜻을 물으니 흙들의 대답이
고분 고분하고... 지겹도록 이어지는 돌계단은 후퇴를 허락하지 않은 길이 설악의 산길이라....
한계령에서 04시에 어둠과 안개속을 헤치며 설악의 길고긴 장도의 길로 나섭니다... 산 허리길에 바라본 보름달이 어느새 서편에
머무는데 갈길 바쁜 나그네는 못본채 걸음만 채촉합니다
한줄기 땀도 흘려보고 설악이 냄품는 신선한 아침공기가 폐부에 찌든 공기와 맛바꿈을 한차례 하고나니 반기는 투구꽃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걸음은 잰걸음 앞서거니 뒷서거니 끝청으로 내달음 칩니다
수많은 산객의 모델이 되었을 법한 등굽은 나무도 줏어담아봅니다... 몇해 전에도 줏어 담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네요
바위틈의 노린 단풍취 잎새는 가을이 익어감을 알려주고 더없이 화려한날 고운 자태의 빛을 발하니 가을은 정녕 아름다운날인것
같습니다
성질급한 마음은 대청에 머무는데 발걸음은 이제 서야 끝청에 서있습니다...운해의 바다에 빠질것 같은 두려움마져도 아침햇살
에 불살라버리고... 햇살은 끝청 산자락에 접어들 무럽부터 귀때기청봉에 산그림자를 드리운채 밝게 빛나고 속으로는 일출을 보
려고 부지런히도 걸었건만 중청 언덕빼기를 한참이나 두고 해는 떠버렸고...
아침 햇살속에 구곡담 위로는 용아릉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동굴속의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고... 내설악의 계곡들이 깊은
골짜기 만큼 솟아오른 험준한 암릉이 몸을 떨게합니다
산자락은 숨박꼭질 하듯 사라졌나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숨가프게 올라선 한계령이 눈아래 아스라 합니다.. 굼실대는 서북능선의
자락은 용아장성의 험준한 바위봉과 산자락에 펼쳐진 암릉.. 한계령을 넘어선 칠형제봉,만물상,망대암산 너머 둥실하게 솏아오
른 점봉산이 아침햇살에 반짝입니다
새벽 어둠속에 발길 닿기를 거부했던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이 솟아 올랏다가 산자락을 달려나가 대승령을 넘어 안산으로 뻗어
가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이토록 지척인데...험준한 암릉으로 솟아오른 가리봉,주걱봉,삼형제봉의 능선까지 몇걸음이면 건너뛸
만큼 가깝게만 느껴집니다
계절은 오래된 사진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잠시 여정을 푼 여름은 산정의 녹음만 뿌려 놓은채 가슴속 그리움의 찌든때를 한겹두
겹 지우듯이 가을이라는 계절에게 바통을 넘겨주려합니다
보내는 여름날이 그리 안타까운지 설악을 찾는 아침까지도 서러운 눈물을 보이여 산정의 아름다움에 질투를 하며 조망를 못보게
하니....어차피 아쉬움만 손에 쥔채 그렇게 떠나갈것인데...붉은옷 갈아입는 고운빛의 채색이 여름에겐 힘든 고행이었나 봅니다
하늘빛이 높아짐은 한계절을 떠나 보내기위한 준비인데...한점 목메여 우는 설악이여..영겁의 세월뒤에 숨어있는 가을의 문지방
을 밟아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여름은 가고 가을마중 나선 설악의 아침은 운해의 바다에서 여름이 헤엄치듯 밖으로 나와 한줌 미련도 없이 가을속으로 빠져들
고만 싶어집니다
다 피우지 못한 비로용담꽃을 담아봅니다 행여 활짝핀 꽃이 있을까 둘레둘레 살펴봐도 보이는것은 아직은 영글지 않은 꽃송이들
만 숲길을 메우고있습니다
산능선에서 바라본 봉정암 사리탑의 모습이지요.. 그 언덕넘어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을 것이고 봉정에서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능선은 용아릉선이지요... 용아를 일곱번이나 다녀왔건만 갈때마다 새롭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송글송글 납니다
설악의 도인은 천년만년 기도하듯 서있는 모습은....세월이 흘러도 쉽게 끝낼것 같지 않은듯... 수렴동을 바라보는 모양이인데..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 자세가 언제쯤 끝이날지.....
안개 사이로 살포시 들어나는 용아의 모습은 여의주를 물고 설악을 굽이치듯이 용틀임하는 기상에 처음 접하는 설레임과도 같게
만 느껴집니다
희미한 연무 사이로 봉정암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걸음은 중청언저리에 머무려고만 합니다
설익은 가을보다는 차가운 날씨 정녕 여름을 보내고가는 가을 마중길일까....산정의 날씨는 변화무상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다 열물지 못한 잎새는 가을옷으로 갈아입기에 분주하고 새빨간 단풍잎은 아직도 눈가에 삼삼한데 오색의 단풍을 보이지 않습니
다.. 예년보다는 첫단풍이 늦을 것이란 기상예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구요...
아침이슬에 젖어버린 분홍빛 고운 열매를 그려담아는데... 잎새가 떨어져 버려서 무슨 꽃일까 궁금증만 더 한데 알수없는 이름앞
에 혼돈만이 가중됩니다
나목은 숲속에 버려져 있지만 화려했던 추억을 알고 있기에.. 우린 이 나목 앞에서 한장의 기념사진을 남기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일망무제의 조망을 한껏 기대 했지만 중청대피소 부근부터 연무가 앞을 가리고... 대청봉까지는 지척이라 한달음에 달려가봅니
다... 빤히 바라다 보여야 할 그곳은 대청의 얼굴을 쉽게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불어오는 대청의 바람이 얼마나 억세었으면 나무들은 제 키만큼 자리지 못한채로 재작년 보았던 그대로의 키재기를 히고있습니
다... 철없이 핀 진달래꽃이 서글픈 울음을 우는듯 설악은 그렇게 가을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더이상 오를곳 없는 산정입니다...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도.. 공룡능선의 암릉도..우뚝솟은 천화대. 나한봉은 어디쯤있을까.. 화
채능선은 어디지...칠성봉등등.. 어느 봉우리 하나 바라볼 수 없는곳..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울산바위는.. 모든것을 채념하듯
다시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갑니다
꿈길에서 그렸던 에델바이스는 어디있는지... 에델바이스의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올것 같은 산길을 따라 소청산정에 내려섭니다
따스한 라면 한그릇이 초가을의 한기를 없애기에 충분합니다
봉정암은 설악산 소청봉 북서쪽 구곡담계곡 시작점 봉정골에 있는 사찰로 백담사의 말사이고 오대적멸보궁의 불교 순례지로 유
명하지요.. 오늘 찾은이가 대부분이 내고향 부산 아주머니들이라 극성스런 절 사랑이 얼마나 강한가 느껴봅니다.. 사리탑에서
한참을 서성입니다..오세암으로 갈까..무리를 해서라도 용아를 탈까 한치 앞을 구별못할 시야 때문에 길 좋은 수렴동 계곡길를
선택합니다
봉정암을 애워싼 멋진 암릉도 담아낼 수 없는 상태라 아쉬움의 발걸음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봉정암과 짧은 이별을 고합니다
구름이 나래를 펴고 쉬어가는 설악의 봉우리와 골짜기는 붉은 가을이 내리고 아스라히 절벽 넘어엔 이름없는 산꽃들이 이 세상
의 아름다움으로 꽃피워 골짜기마다 넋도없는 향기를 흘려 보내겠지요
구곡담 계곡으로 발길을 돌리면 기암기봉이 춤을추고 용아능선의 우렁찬 위세에 눌려 산길을 걷는 나자신이 위대한 자연앞에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짐을 느껴봅니다
맑은 물줄기 암반을 타고 흐르다 폭포되어 뛰어 내리고.. 억년의 세월동안 바위등에 물줄기로 연못을 파네여 담을 이루고 소를
만드니.. 그 속에 연록색 물을 가두어 아홉구비 돌아가는 물은 깊어지고 골은 얋아지니 물길 따라 용아릉도 함께 따라 나섭니다
빛깔좋은 잎새하나 줏어담는것도 흔치 않은일이라 소중하게 담아봅니다...붉은 옷으로 갈아입을때는 눈에들어오지 않겠지만 오
늘아침은 이 고운빛마져 그립기 때문입니다
쌍용폭포, 용아폭포, 용손폭포, 만수폭, 만수담 수많은 소를 이루니 가을 마중길에 더이상 좋을소냐...발걸음도 물길따라 계곡따
라 낮은곳으로 흘러만 갑니다
맑고 아름다운 폭포수에 몸을날려 마음의 때를 씻어 내어 정갈함이 묻어 나오는 내 자신이 되고 싶은데...산정에서 비우고 돌아
서는 마음은 늘 가볍기만 하는데 산정을 내려서는 순간에 다시금 마음의 욕심들이 가득차는 것은 범부의 마음에 좀더 비우며 살
고자 다짐하는지도 모릅니다
생강나무 잎새도 노란 병아리 옷을 입고 길손에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풀섶에 묻어 잠재우던 옛일 그리움 하나둘 뇌리를
거슬러 청춘으로 돌아들고 꽃보다 아름답게 웃어만 주니 이 설익은 가을도 아름답구나
구절초... 너를 마주하여 회환의 기쁨을 돌려받고 한낮 들꽃이어도 나에겐 귀중하고 소중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모든것을
주고 모든것을 받아 우리생의 한자락 처럼 곱게만 피었구나
설악의 꽃잎이 붉고 노랗게 오색의 향연으로 돋아나는 날이면 단풍 그늘아래 숨죽여 머물던 그대와 나의 사랑노래는 애잔한 잎
새에 묻힌 떨어진 낙엽과 함께 이름모를 골짜기를 흐르고 또 흘러가리라
가을한낮 노란 햇살처럼 번지는 그리움을 님에게 바치고 싶고.. 금빛같은 햇살이 늘 가을 같았으면 하는 소원하나 흐르는 맑은물
에 배띄어 보냅니다
나무숲은 황금빛 햇살에 물들어 가고...벼랑은 어느새 붉디 붉은 모습으로 투영되고...바람엔 자줏빛 주단같은 곱디고게 불어오
는 나는 가을같은 사랑을 님에게 주고만 싶다
그대의 허기진 가슴마다 목마름의 생수처럼 내 사랑을 가득부어 옥색빛 맑은물에 노란 가을볕이.. 그대의 머리카랄에 쏟아질때
갈색 윤기가 돋아나면 얼아나 좋을까... 맑은물에 투영되는 가을햇살 같은 사랑을 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화사한 피어있는 구절초의 질긴 생명처럼 긴 세월동안 달콤한 사랑으로 그대는 행복해 하고...투명한 설악의 가을 하늘에 설레임
으로 그려지는 가을 한낮의 햇살같은 사랑으로 힘겨웠던 지난 여름을 잊을수만 있다면...
스치는 갈바람에 단맛을 내며 익어가는 사랑의 열매들을 님의 가슴에 고이 묻어둔채 설악의 가을은 시작되나봅니다...영시암의
곱디고왔던 보살님도 억겹의 세월앞에는 비켜가지는 못하는지 흰머리카락 무성한 반백이 되어있지만 수년전에 맺은 인연으로
아직도 기억해주니 그 마음이 너무 곱기만 합니다
만해 한용운의 정취가 어려있는 백담사가 눈앞인데... 산행의 끝이라 여겼건만 수해로인해 다시금 3km 더 걸어야 하는 길을 걸
으며 하얀 물봉선에 마음 담아보면서 아름다운 동행길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이 함께 하기에 난 행복할수 있었지요
긴여정의 끝...용대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서 또 다른 하루날에 설악에 머물 꿈을꾸고 열시간이 넘은 시간동안 27km 걸어
준 두 발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