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경주최씨중앙종친회가 학사당 등 소유권말소소송제기했으나 제1심 2심 패소판결서//도천 최평열

​<4번쩨 소제기 판결서>

 

 

 

 

전 판결서

 

첫번째​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1995가합1210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 판결문

부산고등법원 제4민사부 97나11126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판결문

대법원 제1부 98다53257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 1999. 12. 21.판결선고

 

두번쩨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의 2000가단3366호 소유권말소등 취하

삼번째

 

2차소송 : 대구지방법원 2003가단98442호 소유권말소등기 등 판결문

2차소송 : 대구지방법원 제2민사부 2005나952호 소유권말소등기등 판결문

2차소송 : 대법원 제1부 2007다10238호 소유권말소등기 등 판결문

 

 

"학사당 빼앗은 적 없다" 최모씨 반박 자료 제시뉴스홈 > 속보 > 사회

"학사당 빼앗은 적 없다" 최모씨 반박 자료 제시

광고
지난 달 5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해인사 초입의 홍류동 계곡에 자리잡은 농산정(籠山亭·지방문화재 제172호)과 학사당(學士堂)에서 열린 '고운 선생 한식향례'(본지 4월 6일자 31면 보도)와 관련, 종중 종사업무를 담당한 총무로 보도됐던 최모(59)씨가 '사실과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씨는 "종중 총무를 맡은 사실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조부 때부터 소유, 관리해온 재산을 1993년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내 앞으로 돌려 놓았을 뿐 빼앗은 사실이 없다"면서 "이런 사실은 지난 1999년 최고운 선생 학사당운영위원회가 제소한 재산권 반환소송에서 대법원의 원고에 대한 상고 기각 판결로 이미 최종 확정되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따라서 "지난해 운영위가 다시 '경주 최씨 학사당 종중'으로 이름을 바꿔 대구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고청구 각하 판결을 받은 것이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씨는 "지난달 행사도 조부 때부터 춘향제 유지를 목적으로 타성 사림 학사당 유계를 만들어 매년 한식향례를 해오던 것을 방해하고 종중이란 이름으로 20여 명 내외의 인원이 참석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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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자연농원/농산정/학사당/가야서당/대표도천최평열=

 

우리 가족이 대를 이어 소중히 점유소유관리하며 유림의 행사를 주선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위우리 가정을 1994부터 사이비단체가 방해하여 1997년경부터 학사당유계, 농산정유계 유림행사가 중단되었고,

우리가 대법원에 승소한 이후 다시 춘향행사를 하기위한 발위를 하였으나 무도한 자들에 방해로 인해 유림과 우리가 힘으로 당해 낼 힘이 없어 결국 못하고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문창후 고운 최치원선생 학사당 건물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학사당에 영정

 학사당유계가 문창후 고운 최치원 춘향향사를 하도로 도천 최평열 주선하다.

 

1990년경 구우언리 홍류동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학사당에서 지역유림인 학사당유계의 춘향행사를 주선하는 석청공 최정순의 장손자 도천 최평열 과 지역 유림제관 님

 영당에서 잔을 올리는 제관님  

 

1989년 경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춘향행사 초현관 합천노군수(좌) 아헌관 이명갑(중) 흰한복 최원회 순 

 1989년 학사당당장 문백 과 유림 최연장 어른 제관으로

 

 초대받은 제관님

 

 제일 앞에 중앙에 석천 최정순의 장님 최주현9최평열의 선친)

학사당유계 당장 문백 씨 향사끝난 뒤 마무리 준비하다  

가야서당에서 학사당 홍도문으로 올라오는 계단 

 

종중(문중)향례행사 조사서

 

 

재실명

문창후 고운 최치원선생 농산정 학사당 가야서당

 

 

 

 

 

사당명

학사당

사 당

 

위패수

1위

 

향례일시

 

춘향제(학사당):한식(04.05.경)

추모행사(농산정):04.17(음)

 

참석인원

약 100명

 

종중또는

 

단 체

학사당 유계(儒契)

농산정 유계(儒契)

 

대표자

주소: 대구시 남구 대명3동 1921-3 양지빌라트 501호

 

성명: 최평열 전화: (053)654-5912 핸드폰: 011-807-5912

 

위 치

학사당: 가야면 구원리 산 2-1 농산정: 가야면 구원리 산 1

 

재실건립

 

연 혁

1927년 건립 후 1936년 현 위치로 옮긴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소송(대법원 확정 판결로 현 대표자 승소) 여파로 1997년부터 향사 중단.

제목부터 유림(儒林) 행사 조사서로 바꿔 달라고 할 정도.

 

배향선생의

 

약 력

최치원(崔致遠, 857~?)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를 지녔던 학자

 

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하지만 높은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현실

 

정치에 펼쳐보이지 못하고 깊은 좌절을 안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가 이룩한 학문과 문장의 경지는 높았으나, 난세를 산 그의 삶은 그가 이룩한 높

 

은 경지만큼 불행했다.

 

사후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저서로 『계원필경』『법장화상전』이 있다.

 

향례방법

 

(홀기)

학사당 : 초헌, 아헌, 종헌, 독축, 집례, 주작, 봉작 등을 분전하여 홀기에의 한 향례

농산정 : 시를 읊거나 짓는 등 문창후 고운 선생을 추모함.

 

 

 

가야면 구원리 홍류동 학사당에서 학사당유계 역임 당장님 등 유림어른을 모시고 매년 춘향해사를 하는데

제관선출 (망권) 초대장을 만든 상황서

 

학사당유계와 농산정유계가 춘향행사 때 제관을 초대하기 위해 선정하고 있는데 무도한 자들이 처들어와 우리조상 우리가 지낼 터이니 유림은

  최평열 편이니  관계 하지마라 ~  유림이 쓴 진정서 ~법원에 제출한 사본

 

진주지원 부상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는 이 부동산은 취득을 하거나 관리한 사실이 없다,

항소심에서 항소인 위원회은 실체조차 없다는 취지로 각하 대법원 기각판결로 패소되어 종결한 뒤 궐기대회를 하고 다시

대구법원에 제소하여 3심모두 각하패소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시위를 했습니다.

 

가짜 종중인 소유권이 있다거나 관리한 사실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사고소 및 소유권소송을 제기 하였으나 패소하였습니다.

제1차소송 = 진주지원눰 http://blog.daum.net/6299842/7585060부산고등법원 http://blog.daum.net/6299842/7585061

대법원 http://blog.daum.net/6299842/7585062제2차 소송 대구법원 http://blog.daum.net/6299842/7585063

 항소심 http://blog.daum.net/6299842/7585064대법원 http://blog.daum.net/6299842/7585065

제 3차에 또 시작할 생각으로 가처분을 했습니다,  http://blog.daum.net/6299842/7596519 이들은 이름을 바꾸어가며 우리 선대님께서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역 유림으로 한 학사당 유계 는 학사당에서, 농산정유계 는 농산정에서 각각 추모행사를 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나타나자 마자 누구 말맏다나 앵커물도 안말라서 자기들 조상이라고 우리조상우리가 제사 지낼 터이니 유림은 관여 하지 말라고 방해하고 가야농협차로 준비한 물건들 실고와 문에 자물쇠를 기구로 절단하고 자기들이 제사를 지내온 것 처럼 궐기대회를 하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소송을 계속해 왔고 패소하여 확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권력자들은 무도한자들의 말에 속지말기를 당부 드립니다.

이 도천 최평열은 10년동안에 제판에 시달려 죽었으야 될 사람인데 조상님의 큰 힘을 주셔서 목숨을 유지하며 승소를 하였으나, 직계 가족들은 마음고생이 얼마나 했을까 하는 생각에,  할말 다 못하고 숨 죽이고 가족을 의로하며 살아고 있습니다.

말은 거짓이 있지만 앞에서 올린 사진으로 확인하여도 입증이 될 것이고 법에서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오래 오래 유림의 향제로 우리가족이 보존하도록 도와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소송 패소인이자 주동자인 가야농협 조합장 및 패소인등은 농협직원으로 농협자동차에 준비물 운반하고 있다.

 

불법행사한 것을 자랑을 하기 위해 매일신문기사 하였다가 정정하도록 반박한 기사있다.

이러한

 패소인가짜 종중은 또 경주최씨 중앙 종친회 대표 최시중 님에게

[주소 누루고 http://blog.daum.net/6299842/7596519 확인]

 찾아가서 거짓 구하고 공모하였으니 무도한 행위를 하다.

님은 조심 또 조심해야 피해가 없을 겁니다.

  

    한 말씀 하시고 떠나시는 뒷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집니다.

 Daum view로 발행되었습니다. MY view  

                  道泉 崔平烈 창작물 추천 해주세요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홍류동)학사당,농산정,가야서당--도천 최평열

2010. 6. 8. 사진과 글

 

1997년도 부산고등법원 항소심 97나11126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판결문 중에 

http://blog.daum.net/6299842/7585061

부산고등법원 1997나11126호 소유권소송 판결문 제9정 판시  

부산고등법원 1997나11126호 소유권소송 판결문 제10정 판시

 그런데, 폐소인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폐소한 뒤 경주최씨중앙종친회

야합되어 

홍류동 학사당 관련 최평열의 소유를 재산을 경주최씨 중앙중친회 재산이라고 거짓주장하면서 경주최씨중앙종친회 대표자 최우중 명의로

 

최평열 승소한 다음 가처분취소를 한 뒤 또 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하여 법원결정을 받았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경주최씨중앙종친회 대표자 주소가 방송공사 주소지로 신청을 했기 때문에 방송공사 최시중에게 알리는 말씀 내용과 입증 증거를 보냈는데도 아직 아무른 답변이 없다.

무도한 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소송에 까지 남포하고 있는데 어찌 나라의 법을 믿을까요,

 

돈과 권력자을 가진 무도한자를 결코 돌아가신 나의 선영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망하게 저주할 것이다.

 

홍류동 : 학사당 (유허비,신도비) 풍경---도천 최평열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홍류동 )소재서2010. 6. 8.

 

제판 판시를 보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1995가합1210호소유권이전등기말소소송판시 

판결문 제6정 http://blog.daum.net/6299842/7585060

 

 

 

홍류동 : 홍류동천 룡(농)산정(籠山亭 : 석벽제시) 풍경---도천 최평열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홍류동 )소재서2010. 6. 8.

 

홍류동석벽제시(紅流洞石壁題詩)

    가야면 치인리 홍류동 학농산정 건너편 석벽에 고운선생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미친 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 하네.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까?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쌌네. 번역: 이은상>
    이 시가 새겨진 돌을 후세 사람들은 치원대 혹은 제시석(題詩石)이라고 불렀다. 이 제시석은 세로 4척 8촌, 가로 2척의 각면에 글자 가로가 5촌 5푼의 초서로 세 줄이 새겨 있다.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의 민사소송 판시 제6정 http://blog.daum.net/6299842/7585060정 

 

 

 

 

 

 

 

 

 

 

  

홍류동 : 가야서장(관리주택) 풍경---도천 최평열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홍류동 )소재서2010. 6. 8.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1995가합1210호소유권이전등기말소소송판시

진주지원제1심판결문 제7정 http://blog.daum.net/6299842/7585060

 

 

 

 

 

 

 

 

 제11정

피고는 도천 최평열이며 최평열의 증조부님 망인 최종기, 조부님 망인 최정순, 선친 망인 최주현입니다. 

부산고등법원판결문 http://blog.daum.net/6299842/7585061주소

대법원판결문 http://blog.daum.net/6299842/7585062 주소

위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경주최씨학사당종중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경주최씨중앙종친회로 들어가서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들 감언이슬 듣지도 속지도 맙시다.

 

경주최씨학사당종중 (대법원판결문 http://blog.daum.net/6299842/7585065)

위와 같이 소송에서 폐소확정이 되었음에도

경주최씨중앙종친회는 경주최씨학사당종중(전신 :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말만듣고 본인의 말은 듣지도 않고 가처분을 하다.

실제귀거 하는 주민등록 주소가 아닌 곳 등기부상 주소지로 가처분 신청하여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폐소인들 거짓감언이슬 한 말만 듣고 그리하는 단체이다.

 

경주최씨대종회 총장님 이런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지난번에 경주최씨대종회를 앞새우기 위해 토지세납부 영수증을 2차래나 보네던이 그런일에 경주최씨대종중이 넘어가지 않게되자,  서울까지 찾아가 경주최씨 중앙종친회를 걸어 않고 다시 재판을 하기 위한 가처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지요,  무도한 간신들 과 손을 잡다니요.

 

경주최씨 중앙 종친회 대표자 최 시 중님이 정말 너무 합니다.

경주최시중앙종친회 발족경위 1957년 4월 16일 경주시 인왕동 소재 상서장 향사시 종친회 창립을 결의하고 그해 가을인 1957년 10월 19일 서울 신광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총회 개최하여 회칙을 제정하고 사무실을 서울 중구 다동에 개설하였는데 어찌 최평열 증조부 망인 최종기, 조부 망인 최정순 그리고 선친을 이어 온 것이 4대째 인데 서울 경주최씨중앙종친회 것이라 하는지요 ? 

 
결주최씨중앙 종친회가

최평열의 명의 소유인

가야면 구원리 (홍유동)에 소재 고운 최치원 선생 농산정, 학사당, 가야서당 및 토지 등 유적지가 서울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소유물이라고 처분금지가처분 한 것은 정말 유감입니다.

소유자인 최평열의 선대에서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홍유동) 소재 고운 최치원 선생 유적지는 1927년과 1936년 1951년경에 도천 최평열의 증조부이신 망자인 최(자)종(자)기(자), 조부이신 망자인 최(자)정(자)순(자) 등이 토지를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이고, 그 지상에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 최종기, 최정순께서 유림(儒林)들의 찬조를 얻어 보태어 가야서당, 학사당, 농산정 건물을 중수(重修) 또는 신축한 후, 학사당유계(學士堂儒契), 농산정유계(籠山亭儒契) 등을 결성하여 춘향행사 및 추모행사 해오는 것인데 최정순 사망 후 그의 장자인 망자 최주현 을 이어 또한 그의 장손인 도천 최평열에 까지 4대째 이어 오는 이 유적을 소유권보존 및 이전등기 등 1993년경에 바로 잡았습니다.


1993년 12월 24일과 1995년 1월 24일에 각각 몇사람이 단합이 되어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를 조직한 후 소유권이 있다며 부동산특별조치법위반 및 업무상횡령죄로 허점을 이용하여 형사고소 및 소유권말소 등 청구소송을 하였고 그 결과 창원지방법원 95가합1210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청구기각, 부산고등법원 항소 각하, 대법원 상고기각 확정되고, 또다시 경주최씨학사당종중 으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방법으로 최평열을 상대하여 대구지방법원 2003가단 98442호 소유권말소등기등 청구각하, 항소심 기각, 대법원 상고심 기각하여 청구인 패소로 도천 최평열 모두 승소되었습니다.


경주최씨중앙종친회 가 1998년 부산고등법원 2003년도에 대구지방원고 항소심에 각각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와 경주최씨학사당종중에 진정한 소유자라는 취지로 진정서를 두 번이나 제출해 주는 등기분 안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경주최씨중앙종친회 이제 와서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대표자 이름으로 남의 소유에다가 처분금지 가처분을 해 두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합천군 가야선 (홍유동) 소재 농산정, 학사당, 1927년 가야서당 1951년경 신축 및 중수 한 것인데, 경주최씨 중앙 종친회의 연혁을 보면 뒤에 발족했다.

  

경주최시중앙종친회 발족경위 1957년 4월 16일 경주시 인왕동 소재 상서장 향사시 종친회 창립을 결의하고 그해 가을인 1957년 10월 19일 서울 신광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총회 개최하여 회칙을 제정하고 사무실을 서울 중구 다동에 개설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 이사를 한 후 1995년 6월 10일 서울시 종로구 적선동 80 적선현대빌딩506호 전화 02-732-8118, 9,당시 사무실을 옮겼다 한다.


시군조직 전국 1백 70여개 시군지역 종친회 및 계파종친회 결성 했다 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경주최씨대종보 1997년 5월 15일 목요일 신문에 잇음]


어떻게 ! 경주최씨중앙종친회가 1957년 이후에 설립하여 그전에 도천 최평열의 선대님들이 1927년 1936년 1951년경에 각 신축 중건 한것 들이며 유림향례등을 하고 있는것을 경주최씨중앙종친회에서 자기들 것인양 남의 소유물에 가처분을 하고 재판을 소단체들이 2번이나 패소하자 이제서 중앙종친회 대표자이름으로 가처분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도천 최평열 드림.  

 

창원지방법원진주지원, 부산고등법원, 대법원 등 판결문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소송제기 페소하였는데 또 폐륜들 말만 듣고 내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

이렇시다니요 ? 권력에 안지면 최고입니까? 

(카메라 시간 고장으로 사진에 시간이 털림)

 

 

 

 

 

 

 

 

 

 

 

 

 

 

 

 

 

 

 

 

 

 

 

 

 무도한 인간들 짐승맞도 못하지요. 폐소를 인정할 줄도 몰라요. !

항소이유서

준 비 서 면


사건 2009나 18227호 공탁금출급청구권확인 등


원고 (항소인) 최 평 열( 전화011-807-5912)

피고 (피항소인) 한국도로공사


위 사건에 관하여 위 항소인 석명준비명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준비합니다.


다           음

 

제 1,   원심 판결 

청구취지

피고가 2002. 5. 21. 창원지방 법원 거창지원 2001. 금 제266호로 공탁한 12.534.160원의 공탁금출급청구권이 원고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12.534.160원을 지급하라.

 

원심판결 이유

1. 기초사실

0 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386-11답 1.157평방미터 (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함) 는 같은 리 답 1.444평방미터에서 분할된 토지로서, 1974. 4. 24. 각 3분지1지분으로 소외 최학사, 최학수,최효순,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결료되어 있다가, 그 중 최효순의 지분은 2000. 5, 19. 상속인인 최주황을 거쳐 원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됨, 

0  그러던 중 국(國)은 이 사건 토지를 88고속도로 영업시설설치 사업부지에 편입하기로 하고, 그 중 원고 소유 지분에 관하여는, 2000.5. 25. 협의취득하여 같은 달 27일. 자신의 명의로, 최학사, 최판수 소유 지분에 관하여는 2001. 7. 31. 토지수용하여 같은해 8, 1. 자신의 명의로, 각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함,

0  위 사업의 시행자(기업자)인 피고는 이 사건 토지를 협의취득 및 수용하면서, 최학사 소유지분에 관하여보상금 12.534. 160원을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01년 금제266호로 공탁함(이하 "이 사건 공탁금"이라 함),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갑 제4호증의 1의 각 기재, 변론의 전 취지

 

2.  원고의 주장 및 판단

가. 원고 청구원인의 요지

원고는, 이 사건 토지의 지분 소유권자로 등기된 최학사 는 원고의 조부인 망 최정순의 예명으로서, 원고가 그의 권리 의무를 상속하였으므로 직법한 소유자로서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공탁금 출급청구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확인을 구하고, 이를 전제로 하여 공탁금 12.534.160원의 지급을 구하고 있음,

 

살피건데, 원고가 제출한 갑 제5 내지 22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공탁금 출급청구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확인을 구하면서, 이를 전제로 공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원고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이기 어려움(금전지급천구 부분에 관하여, 기업자가 보상금 수령권자의 절대적 불확지를 이유로 수용보상금을 공탁한 경우 수용 토지 원소유자가 기업자를 상대로 절대적 불확지의 공탁이 된 공탁금에 대한 출급청구권이 자신에게 귀속되었다는 확인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면 그 확정판결 정본은 공탁사무처리규칙 제30조 제2호에 정한 '출급청구권을 갖는 것을 증명하는 서면'에 해당하여 수용 토지의 원소유자는 위 판결 정본을 공탁금출급청구서에 첨부하여 공탁소에 제출함으로써 공탁금을 출급받을 수 있으므로, 어느모로 보나 받아들이기 어려움)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한 이무상  판사 2009. 10. 30. 판결에 대하여,  결국 심리 미진 내지는 채중법칙 위반으로 사실을 오인 하였거나 범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것입니다.

 

제 2.  원고는 이 사건에 대하여 기초사실

 

1.  원고의 소유 재산인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09번지 소재 홍류동 :  학사당 고운 최치원 선생 기리기 위한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 등 각 건물 및 토지 등 총 11필지 재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입 증 방 법

각 판결문 청구취지 및 별지 목록 및  갑 제16호증 1~10, 각 토지 대장 갑 제17호증의 1~3, 각 폐쇄등기부등본, 갑 제 22호증의4 학사당 재산 비품 안, 갑 제26호증1 학사당 숭모계 대표자 최재길 등 소장입증방법 총 11필지의 내역 등 참조 : 이 재산은 모두 동일 한 원고 소유입니다.

 

* 각 등기상 소유자 주소 및 소유자 이름

(1건째)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20번지 답 1.190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65. 6. 29. 최학사(崔學士)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그 중 50/360 지분에 관하여 1979. 7. 10. 소외 김외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고 나머지 310/360 지분에 관하여 1993. 8. 6. 최평열 명의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2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09번지 대 357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77. 11. 24. 최학사(崔學士)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93. 8. 6. 최평열 명의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3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09, 610번지 지상 건물 가야서당 57.12평방미터  등 건물이 소유자는 소외 최정순(崔晶淳)이었다가 1968. 9. 30. 원고 최평열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고,

 (4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 1번지 지상 건물 농산정 19.38평방미터 건물이 소유자는 소외 최정순(崔晶淳)이었다가 1968. 9. 30. 원고 최평열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고,

 (5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 2-1번지 지상 건물 학사당 17.10평방미터 등 건물이 소유자는 소외 최정순(崔晶淳)이었다가 1968. 9. 30. 원고 최평열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고,

(6건째)경남 합천군 야로면 매촌리 502번지 답 1.620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73. 10. 16. 최학사(崔學士), 최효순(崔孝淳) 명의로 공동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93. 6. 22.에 원고 최평열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7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번지 전 340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73. 10. 16. 최학사(崔學士), 최효순(崔孝淳) 명의로 공동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93. 8. 6.에 원고 최평열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8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57-5번지 3.229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65. 6. 29. 최학사(崔學士)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4. 2. 15.에 최학사숭모계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93. 8. 6. 에 원고 최평열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9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83-1도로 99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36. 5. 11. 최곤술, 최정순 등5인 공동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었다가 1993. 8. 6. 원고 최평열로 소유권이전등기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 [실소유자 최평열] 미등기상 소유자 등

(10건째)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85번지 답 456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 1981. 3. 13. 하금희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었다가 1990. 2. 23. 최주현(원고 아버지)로 소유권이전등기기 되었습니다.

(11건째)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386-5번지 답 1.444평방미터 토지에 관하여는 1974. 6. 24. 최학사(崔學士), 최판수(崔判秀), 최효순(崔孝淳)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최효순(崔孝淳) 3분지1지분에 관하여는 2000. 3. 15.에 최주황 명의로 재산상속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2000. 4. 30.에 최평열 명의로 증여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2000. 5. 25.에 공공용지의 협의취득 되었고,  최학사, 최판수 3분지 2지분에 관하여 2001. 8. 1. 에 소유자 국 관리청 건설교통부로 토지수용지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되었습니다..[갑제15호증의7, 갑제15호증의1-9 참조 ] 

 

 위와 같은 원고 소유재산은 모두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 건물에 속하며,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한 재산입니다,

재산중 위와 같이 건물이 3건(3동) 토지가 8건(필지) 총 11건(필지) 이 재산은 동일 한 재산으로 원고 집안에서 증조부 소외 망 최종기(1937년경 사망), 조부 소외 망 최정순(1966년경 사망), 부 소외 망 최주현(1992년경 사망) 으로 이어 오다가 종손인 원고 최평열 에게 유산되어 온 사건 부동산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다만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및 학사당숭모회(계 경주최시학사당종중 "동일한 허구단체에서 탈취할 목적으로 원고 최평열을 총무라며 고소하고 허위진술로 왜곡한 것입니다".  (갑 제20호증1의1 제174장, 갑 제20호증1의2 제177장, 갑 제21호증1  제216장, 갑 제22호증의 4,학사당재산목록, 갑 제26호증의1~5 소장 및 회의록 참조)

 

제 3.   위 재산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판시가 있다.

 1.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1995가합1210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등 판시 인용

(1)  원고는 본래 고운 최치원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이를 추모하여 오던 학사당 건물이 해인사의 경내에 있다가 소실되어 그 영정만을 해인사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1927년경 원고의 증조부인 소외 최종기와 조부인 소외 최정순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 일부지상에 학사당 건물을 신축하고 고운 최치원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위 장소가 다습지역이고 건물이 부실하여 기둥 하단부가 손상되자 위 원고의 증조부 소외 망 최종기, 조부 소외 망 최정순 등은 1936년경 학사당 건물을 이건을 위한 뜻을 밝히고 최씨 일족 및 유림들에게 찬조를 요구하여 그 재원으로 1937년경 해인사 소유의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 1번지 지상에 현재의 학사당 건물을 신축하였다.[갑제6호증 판결문 제27장 제(1) 참조]


(2)  농산정은 본래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로서 1936년경 그 흔적만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위 원고의 증조부 최종기, 조부 최정순 등이 주축이 되어 그 중수를 위한 모임으로서 농산정중수기성회를 결성하고 복원공사를 하여 1938년경 과 1952년경에 이를 각각 중수하였고, 그 후 위 농산정은 1990. 1. 15. 경상남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되고 원고가 그 관리자로 지정되어 1991년경 행정당국에서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갑제6호증 판결문 제27장 제(2) 참조]


(3)  그리고 위 원고의 조부 소외 망 최정순 등은 1944년경 [갑제6호증 판결문 제34면 별지목록 제2기재 및 제7기재의]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609대지 357㎡,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 전340㎡ 각 토지 및 그 지상의 홍도여관 건물을 매수한 후 1949년경 학사당, 농산정에서의 향례 등 행사를 위하여 여관건물을 헐고 그 지상에 가야서당을 신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위 원고 조부 소외 망 최정순이 주축이 되어 1949. 3.경 가야서당 건립을 위한 성금을 내 줄 것을 요청하여 대구, 합천, 거창 등지의 유림들로부터 모금을 하고 그 재원으로 1951년경 가야서당 건물을 완공하였습니다.[갑제6호증 제28장 제(3) 참조]


(4)  한편 위 학사당의 건립 이후 1938년경 그 지역에 거주하는 경주최씨를 구성원으로 하여 향례 등을 주관하고 위 건물의 관리 등을 목적으로 한 학사당계가 조직되어, 임원으로 계장, 부계장, 재무, 평의원, 총무 등이 있었고 그 모임은 홍류동에서 매년 한식일에 가지기로 하였는데, 그 인원이 감소하게 되자 1942년경에 이르러 이를 학사당유계 또는 유계 로 개칭하고 타성의 유림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대표자인 계장을 당장으로 바꾸어 그 때부터 현재까지 활 동을 계속 하고 있으며 1995년 이후에는 소외 이대영이 당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농산정의 중수 이후 그 건립에 찬조를 한 지역의 유림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농산정유계 가 결성되었다가 1956년경 농산정유계안이 경비되었으며, 임원으로는 계장 및 총무 등이 있고 그 유계도 현재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갑제6호증 판결문 제28장 제(4) 참조]


(5)  [갑제6호증 판결문 제34장 별지목록 제1, 제6기재의]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20답1.190㎡, 경남합천군 야로면 매촌리 502 답1.620㎡ 각 토지는 위 원고 조부인 소외 최정순이 매수하여 가야서당 고지기의 양식 답으로 사용해 오던 것인데, 그 중 [갑제6호증 판결문 제34장 별지목록 제1기재의]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520답1.190㎡ 토지의 일부를 고지기로 있던 소외 김외수에게 양도하여 [갑제6호증 판결문 제23장 1등기의 경위 제(1)참조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위 김외수 명의로 지분소유권이전등기가 된 것이며, [갑제6호증 판결문 제34장 제6기재의] 토지에 관하여는 위 원고의 조부인 소외 최정순의 사망후 그 동생인 소외 최효순과 [ 갑제11호증 제47장 농산정계회시집철, 갑제12호증 53장 진술서(이권두) 참조 ] 최학사 가 공동원고로 되어 위 최정순을 상대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의제자백에 의한 승소판결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원 1973. 6. 27. 선고, 73가단 21 판결] 을 받아 그들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되었던 것입니다.[갑제6호증 제29장 제28장의 (5)항 참조]


(6)  이 사건 각 부동산 중 각 토지는 위와 같이 원고의 증조부인 소외 최종기로부터 조부인 소외 망 최정순에 이르기까지 원고의 선대가 중심이 되어 학사당유계 나 농산정유계 가 관리를 해 오다가 1965년경부터 1977년경까지 사이에 사망한 최정순의 이명 최학사 와 위 종조부인 소외 최효순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된 후에도 원고가 주로 위 각 유계의 행사나 모임 등을 준비하고 평소 이를 관리해 왔으며, 1993년 특별조치법 시행당시 위 각 토지와 가야서당, 농산정 및 학사당 건물인 [갑제6호증 제34장 별지목록 제3 내지 제5기재의]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609. 610. 양지상 목조 토기와지붕 단층 가야서당 및 대문 가야서당 57.12㎡등, 같은 군, 면, 리 산1 지상 목조 토기와지붕 단층 농산정 19.38㎡등, 같은 군, 면, 리 산2의1 지상 목조 토기와지붕 지상 학사당 17.10㎡ 각 건물에 관하여 [갑제6호증 제24장 제(3) 참조의]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 명의로 이전등기를 경료한 것입니다.[갑제6호증 제29장 제(6)항 참조]


2.   피고 한국도록공사가 제출한 2009. 8. 14.자 제출한 답변서 제57면 및 2009. 8. 20. 접수의 을호증목록 제62면의 을 제1호증의 1, 2, 각 판결문사본 과 을제2호증 준비서면 에 대하여


가.  원고 상대로 소유권이 있다고 [ 을제1호증 1. 2. 판결문 형사고소한 자들의 ]  소유권말소청구인 원고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인 피고 최평열 [ 갑제6호증 민사판결문 의] 원고 위원회 결성경위 [판결문상 “원고 위원회”를 “피고 위원회” 라 호칭합니다. ]

(1)  [ 을제1호증 1. 2.의 판결문의] 피고 위원회가 본래 어떤 경위로 조직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피고위원회의 명칭을 사용한 회칙은 1982. 4. 5. 최초로 시행되다가 1993. 4. 4. 개정되고 1995. 1. 24. 에 다시 개정된 것으로 되어 있다. [갑제6호증 제30장 제(1) 참조 ]


(2)  피고 위원회의 회원자격에 관하여는 본래 처음의 회칙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가 1993년의 개정당시 그 회원자격은 고운 선생의 후예로 한다고 규정되었으며, 원고는[갑제6호증 판결문상의 피고 최평열를 원고 라 합니다] 그 임원 중 위원으로 재직하였다가 1993. 12. 24. 에는 [고소인들이 임의로] 총무로 선임되었다. [갑제6호증 판결문 제30장 (2) 참조]


(3)  그런데 [ 갑제6호증 제23, 24, 등기의 경위 참조 ] 위와 같이 원고 최평열가 이 사건 각 부동산에 관하여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보존등기를 경료하자, 피고 [을 제1호증 1. 2, 판결문 고소인의 ] 위원회는 1994. 4. 5.의 정기총회에서 원고를 형사고소하기로 결의한 다음

[ 갑 제19호증의1. 2. 갑제20호증1-1, 2, 참조 ]  원고를 특별조치법 위반 및 횡령죄 등으로 고소를 당해, 원고는 횡령부분에 관하여는 혐의없음 결정을 받았으나, 특별조치법 위반죄 등으로 구속기소 되어 제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1994. 11. 25. 선고, 94고합185 판결) 1995. 3. 30. 항소심(부산고등법원 94노 1778)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에 2년의 판결을 선고받았고 그에 대한 상고가 1995. 7. 14. 기각되어 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으며, 또한 고소인 피고 위원회는 1995. 1. 24. 임시총회에서 위 각 부동산의 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의하고 그 후 [갑 제6호증 판결문 ]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의 95가합 1210호 로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갑 제6호증 제30장 (3) 참조 ]


다.  (원고)피고 위원의 주장에 관한 판단 [갑제6호증 판결문 제30장 참조 ]

(1)  피고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 위원회의 전신으로 학사당이라는 권리능력없는 사단이 존재하였다가 1973년경 최학사 로 개칭된 후 1982년에 현재의 피고 위원회로 된 것이라고 하면서, 피고 위원회는 최치원 선생을 시조로 하는 경주 최씨 문중원 중 합천, 대구, 거창, 진주, 김천, 부산등지에 거주하는 회원가입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구성원되어 있고 그 피고 위원회가 이 사건 각 부동산의 소유자이고 이울러 그동안 이를 관리해 온 것이며, 원고 개인이 위 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갑제6호증 제31장 (위 (1) 참조 ]

 

(2)  우선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 사건 부동산의 취득목적과 관리경위에 비추어 볼 때, 위 부동산은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서 비록 원고의 선대인 위 최종기, 최정순 등이 주동이 되어 활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를 원고의 선대 개인의 소유로서 원고 상속받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 하나.


(3)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 위원회는 1982년경에 그 명칭을 사용한 회칙이 남아 잇을 뿐 그 이전에 학사당이나 최학사 라는 명칭의 단체가 존재하였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고, 더구나 이 사건 각 부동 중 각 토지에 관하여 등기명의자로 최학사 라는 이름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 시점은 이미 1965년경 부터여서피고 주장과 같이 1973년경에 이르러서 총회의 결의로 피고 위원회의 명칭이 최학사 라고 개칭되었다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만약 최학사 가 피고의 과거 명칭이었다면 [갑제6호증 제34장 별지목록 제6, 제7기재의 ] 경남합천군 야로면 매촌리 502답1.620㎡ 최학사, 최효순,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전 340㎡ 최학사, 최효순 각 토지에 관하여 등기명의를 최학사 이외에 최효순의 공동명의로 할 아무런 이유도 없던 점에 비추어 최학사 가 피고의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의 전신이라는 피고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갑제6호증 제31장 (30 참조 ]


(4) 뿐만 아니라 앞서 본 전술 이 사건 각 부동산의 취득경위와 가야서당, 농산정 및 학사당 건물을 신축하거나 중수할 때 원고 최평열의 증조부 소외 망 최종기, 조부인 소외 망 최정순 이 주축이 되어 그 지역 경주최씨 문중원이나 타성 인 유림

들의 지원을 마련하였던 점과 그 후 학사당유계와 농산정유계가 현재까지 향례를 지내고 모임을 가지며 활동해 오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 위원회 주장과 같이 합천 등지의 경주최씨 후손들 중 가입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피고 위원회가 당초부터 이 사건 각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거나 또는 이를 관리해 왔다고 볼 수도 없음이 분명하다, 판시하였다.[갑제6호증 제32장 제(4) 참조 ]


그렇다면 이 사건 각 부동산이 피고가 제출한 을 제1호증 1. 2. 고소인 위원회의 소유이고 위원회의 주장하는 금원을 횡령하였을 전제로 하는 위원회의 이 사건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것도 이 이유없으므로 이를 기각 하기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시 하였다.[ 갑제6호증 제32장 4결론 제22장 주문 참조 ]


라.  피고 원심서 제출한 을제1호증의1. 2. 및 을 제2호증의 실체에 관하여

부산고등법원서 위 진주지원 1995가합1210호 페소로 항소한 부산고등법원의 사건 97나 11126호 소유권이전말소등 [갑제20호증의2 판결문 제182장 참조 ] 은 대구 최재효 변호사와 원고 최평열과 다툼을 한 소송 판결입니다.  

 

* 이 사건 피고가 제출한 고소인 및 민사 판결문 등(을 제1호증의 1. 2. 을 제2호증)의 실체에 관하여, 판단 

 가. 원고(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의 주장과 앞에서 인정한 사실을 기초로 원고의 당사자능력에 관한 보건대, (1) 학사당, 학사당계와 원고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 (2)원고의 구성원의 법위가 분명하지 않다, (3) 원고의 명칭, 목적과 결성시기에 비추어 권리주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나. 따라서 원고는 학사당계에서 조직변경된 단체이고 합천, 대구, 거창, 김천, 진주,부산 등지에 거주하는 경주최시 종중운중 회원으로 가입한 종중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종중과 유사한 씨족단체로서 독립된 당사자능력을 가지는 법인 아닌 사단이라고 볼 수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소는 부적법하므로 각하할 것인 바, 이와 달리 원고의 당사자능력이 인정됨을 전제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은 부당하므로 원심판결을 취소하여 원고의 소를 각하한다.  [ 갑제20호증의 2 판결문 제192장 참조 ] 


마. 원고 위원회가 부산고등법원1997나1126호에서 페소하고, 대법원 사건 1998 다 53257호로 상고하였으나 1999. 12. 21. 자  아래와 같이 원심판결 그대로 인정하고 기각하여 확정이 되었다. [ 갑 제20호증의 3 제199장 참조 ]

 

첫째,  원고가 종전의 학사당계와 동일한 단체라는 주장에 관하여는, 증거에 의하여, 고운의 영정을 봉안하고 이를 추모하던 학사당이 해인사 경내 잇다가 소실되어 그 영정만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었는데, 피고의 증조부인 최종기 등이 1927년 무렵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에 학사당 건물을 신축하여 그곳에 고운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림들에 의하여 향사가 봉행되어 오다가 그 장소가 다습하고 건물이 부실하여 기둥이 썩게 되자 증조부인신 최종기, 조부이신 최정순, 최곤술( 갑 제26호증의2. 3. 최곤술 장손자 최재욱 국회의원의 맏 형은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 소취하 ) 등 고운의 후손들이 1936년 무렵 경주최씨 종중원들이 섬금, 유림들의 참조와 합천군수의 협조를 받아 같은 산 1에 새로이 학사당을 건립하고 고운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위 학사당 건물이 완공될 무렵 최곤술, 최정순 등이 학사당 인근에 거주하는 경주 최씨 38명을 구성원으로 하고 학사당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여 학사당계 를 조직하직한 사실, 학사당계는 해마다 한식절에 학사당에서 거행되는 향례를 주관하고 학사당을 유지, 관리하여 오다가 1943년 무렵 부터 활동을 중단하였으나 1948년 무렵에 이르려 명칭을 "학사당유계" (學士堂儒契) 로 바꾸어 경주최씨가 아닌 인근 유림들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대표자의 명칭을 당장(堂長)이라 하여 현재까지 그 조직 및 활동이 유지되고 있는 서살을 인정한 다음, 달리 종전의 학사당계가 원고로 조직이 변경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고,

 

둘째, 원고가 현재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회칙에는 회원의 자격이 "고운 선생의 후예" 라고만 되어 있는데 이는 원고가 소장 및 준비서면에서 주장하고 있는 원고 구성원의 자격범위와 일치하지 않고, 달리 그 구성원의 자격, 범위 등이 규약에 의하여 명확히 정하여져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셋쩨, 원고의 명칭과 목적 및 원고의 결성시기가 이미 학사당과 농산정, 가야서당이 건립된 이후인 점 등에 비추어도 원고는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이 다른 단체의 소유임을 전제로 이를 관리하고 고운에 대한 향례를 주관하는 위원회 라고 볼 수 있을 뿐 별도의 권리주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3, 살펴보니,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당사자능력의 존부에 관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법리오해나 심리미진의 위법 등이 없다, 따라서 상고이유는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4. 그르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여주문과 같이 (상고를 기각한다.) 판결한다.

 

위와 같은 판결을 받은 후

원고 위원회가 피고 최평열 명의의 각 부동산에 한 가처분에 관하여,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제2민사부 사건 2000카합 9 사정변경에의한가처분취소 신청인 최평열 피신청인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의 주문피신청인과 신청인 사이의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95카합 164호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사건에 관하여 위 법원이 1995. 3. 16. 별지목록 [ 갑제20호증의4 판결문 제204장 참조 ] 기재 부동산에 대하여 한 가처분결정을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신청인의 부담으로 한다, [ 갑제20호증의 4 판결문 제201장 참조 ]. 판결을 받았다.


그후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의 사건 2000가단 541호 건물명도 원고 최평열 피고 1이상순 2김석환 의 주문 피고들은 원고에게 별지 목록 기재건물을 명도 한다.  [갑제20호증의5 판결문 제206장 참조 ] 판결을 받았다.


바.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최학사 숭모회 로 이름을 바꾸고 이 사건 토지 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386-5(분할 386-11 포함 최학사, 최판수, 최효순 ) 3인 공명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소유자는 위 학사당 소유자인 최평열 소유이다, 

 

최평열 소유로 된 학사당 건물 재산목록에 [갑제22호증의4 학사당 재산 안] 기입되어 있고. 위 토지를 경작해온 최효순의 자식이 고소인들 편에서 증인도 하며 억지 부리다가, 원고가 소송에서 승소를 하자 인정하고,  자신의 아버지 최효순 명의 3분지 1지분은 자신이 상속받아 최평열에게 증여하고 최평열은 한국도로공사에서 편입된 보상금을 찾고, 나머지기 3분지 2에 대하여는 지역 농위위원들의  실소유자 확인을 받아서 원고 최평열 보상금을 찾게끔 해 주기로 약속 까지 하였다, (갑 제7호증, 갑 제28호증의 35장에 보면 있다)

 

그런데 그무렵 학사당숭모계 대표자 최원수와 최주황은 짜고 원고 최평열이가 횡령죄 및 절도 등으로 고소를 하였으나 그러나 혐의없음 처분결정 받았다. (갑 제26호증의 5 학사당숭모회 총회회의록, 갑 제21호증의 1 2001형제 41233호공소부제기이유고지 ),

 

따라서 이 사건 경남합천군 야로면 야로리386-5(386-11포함)번지 토지애 관하여,  최주현이 1974년경에 최효순(최주현의 삼촌) 시켜 구입하여 편의상 최학사(최정순 사망으로 이명), 최판수, 최효순의 3인 공동명의키로 하였다, 그리고 최효순 아들이 지금까지 경작해 왔다, (갑 제7. 8. 9.호증 참조) 원고가 경작료를 받고 관리해 왔다.

 

*위 학사당 숭모회 대표자 최원수는 경주최씨 학사당 종중으로 명칭을 바꾸고었다.

경주최씨학사당종중은 전시이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최학사숭모회 가 되는 샘이다,

경주최씨학사당종중 이름으로 2003년 3월경 법무 법인 태양 백오기 임윤성 등 선임하고, 이 사건 관련된 부동산에 대하여 등기 명의자인 최평열 원고에게 소유권 말소하라는 소송을 대구지방법원 2003가단 98442호로 청구해 왔다, 그러나 2004. 10. 8.자 주문 과 같이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 는 판결선고 하였다. [갑제21호증의2 판결문 제217장 참조 ]


다시 항소했다, 대구지방법원 제2민사부 2005나 952 소유권말소등기등 항소부에서 항소인 경주최씨학사당종중에 대하여 2006. 11. 27. 주문과 같은 원고 경주최씨학사당종중 항소를 기각한다. 는 판결을 하였다.  [갑제21호증의3-1, 2 판결문 제226장 참조 ]


 또 상소 했다,  대법원은 2007다 10238 호 소유권말소등기등 에 대하여 상소인 경주최씨학사당종중에 대하여 상소를 기각한다, 는 판결선고 를 하였다, [갑제21호증의4 판결문 제245장 참조]

 

위와 같이 소유권이 원고 명의의 잇는 그대로 확정판결이 종결 되었다. 

제 4.  최학사 와 최정순 동일인 에 대하여

 

가.   농산정계회 시집 1963년경 작성한 책

 

   籠山亭係會 詩集(농산정계회 시집 1963년경 만든 서책에 1966년 작성 ) 친분이 돈독한 선비들이 부르는 호칭으로 "최학사"라한 것입니다.  崔學士( 최학사 ) 晶淳( 정순 ) 는 최정순( 崔晶淳 ) 이 동인이라 하였습니다,  石川(석천 아호) 입니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증거이며 예명입니다. ( 원고 제출의 갑 제11호증 제12호증 제23호증의 7 각 참조 )

 

나.  최학사가 최치원 선생을 의미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1) 최학사 라는 명의는 아래와 같은 판결의 경의를 보더라도 최치원 선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경남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10소재 전 340㎡, 609 대지 357㎡ 의 경우를 보면 이는 분명해집니다. 위 토지는 원고 조부 망 최정순(최학사) 이 전 소유자인 이장우로부터 1944년 무렵 각 토지 및 그 지상의 홍도여관 건물을 매수한 후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1949년 무렵에 학사당, 농산정 에서의 향례 등 행사를 위하여 여관 건물을 헐고 그 지상에 가야서당을 신축까지 하여 점유관리 해오던 원고의 상속재산이었는데, 원고 조부 최정순의 사망 이후에 그의 동생 최효순이 관리하는 기화로 임의로 610, 609 각 부지 (양 지상 가야서당)에 관하여 610번지에 대해서 전 소유자 망 이장우를 피고로 하고 그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원에 원고 최정순의 이명인 최학사와 동생인 최효순 공동명의로 토지소유권이전등기절차이행의 소를 제기하여 하였으며, 609번지에 관하여는 위 이장우의 손자인 이동수를 피고로 하여 원고 최학사(망자 최정순 이명)소송 대리인 최효순이 되어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원에 소유권이전등기의 소를 제기하여 의제자백으로 승소하여 1993년 무렵 각각 원고 명의로 돌려준 것이다,[갑 제23호증의1~3 판결문 참조][ 이사건 합천군야로면 야로리 386-5(386-11)의 등기상 명의자 최학사 ( 최정순 ) 등기상 주소지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09번지 동인의 주소와 건축물관리 대장상 주소가 같점. ] 원고의 상속제산이었는데, 원고 조부 최정순의 사망이후에 그의 동생(원고의 종조부 ) 최효순 이 관리하는 기화로 임의로 610. 609. 각 부지 ( 양 지상 가야서당 ) 에 관하여 610번지에 대해서 전 소유자 망 이장우를 피고로 하여 그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원에 원고 최정순의 이명인 최학사 와 동생인 최효순 공동명의로 토지소유권이전등기절차이행의 소를 제기하여 하였으며, 609번지에 관하여는 위 이장우의 손자인 이동수를 피고로 하여 원고 최학사 ( 망자 최정순 이명 )소송 대리인 최효순이 되어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원에 소유권이전등기의 소를 제기하여 의제자백으로 승소하여 1993년 무렵 각각 원고 명의로 돌려준 것입니다, [갑 제 23호증 1 내지 3 판결문사본, 갑 제6호증 제22장 판결문 참조, ].

 

(2) 원고(최고운 선생 학사당 관리위원회)의 전신인 학사당은 최치원 선생을 시조로 하는..(생략)...권리능력 없는 사단이다.

 

(3) 위 학사당은 1973년경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최학사"로 개칭하였다가 1982. 4. 5.부터 "최고운 선생 학사당 관리운영위원회"라는 원고 명칭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위 허무인 단체는 최학사라는 명칭을 자신들의 전신인 당체로 주장을 계속해오다가 을 제1호증의2 을 제2호증의 사건에 이르러서부터 이사건에도 "최학사'가 최치원 선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위 허무인 단체는 최학사라 는 명의가 등기부상 동장하자 유령단체를 만들어 소송을 제기하다가 당사자능력이 인정되지 아니하자 이 사건 소에 이르러서까지 최학사는 최치원 선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 제6호증 제25장 원고의 주장 제37장 (3)항 참조 ],

 

다. 최학사의 진정한 의미

 

(1) 최학사을 부으는 이름은 호 "해운", "고운" 이며, 벼슬 은 "한림학사" 와 "고운 문창후 선생"입니다, 사적지로서는 경주최씨 대종(경주에 있음) 최치원 선생 영정을 모신 곳이 옛날에 임금에게 상서를 올려다하여 "상서장" 이며, 원고 대종중(대구시 불로동)의 최치원 선생 영정을 모신 곳은 종인들이 구월 구일에 모인다고 "구회당", 부산시 해운대에 있는 최치원 선생 동상을 모신 곳은 해운(최치원 호)이 다녀갔다고 해운대이며 동상까지 새웠습니다.

 

(2) 원고가 최치원 선생 영정을 모시고 있는 "홍류동"은 최치원 선생이 쓰신 글을 따 홍류동이 불러진 것이며, 홍류동에서 후생들을 양성하였다고 학사당으로 이름을 지었으며, "최정순"은 그 학사당 건물을 건축하였다하여 성을 따서 친분이 돈독한 선비들이 부르는 호칭으로 "최학사"라 한 것입니다. 옛날 시골 서당에서 학동들 공부를 가리키는 사람을 훈장 또는 학사라 칭했고, 요즘 외국 유학을 하면 학사, 박사를 하는데, 최치원 선생만 학사로 지칭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3) 학사당은 건축물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며, 최고운 선생을 지칭하는 것은 해운 최치원 선생, 고운 최치원 선생, 고운 문창후 선생으로 높이는 말입니다. 원고 조부 망 최정순이 학사당계를 만든 이유는 학사당 건축물을 유지함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함이 있는 것이며, 그러한 뜻으로 최치원(최학사)의 뜻을 받들어 학사당계는 최정순(최학사) 숭모단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그의 동생 맟 최효순도 그것을 알고 생존 이름을 사후에 사용하지 않음으로 그의 형을 높이는 뜻으로 오래 보존하도록 이명 최학사(최정순)로 각 부동산 토지에 등기를 한 것이며, 당시 집안 문제가 없이 화해하고 그후 1993년도에 원고 본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23호증의 1~3, 갑제25호증의4 각각 참조]     

 

(4) 피고는(을 제1호증의2 을 제2호증 피고 최정화)  원고 조부 망 최정순의 호적상 주소 매촌리 92번지에 있는데. 토지는 왜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609번지에 되어있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예전에는 요즘처럼 주민등록이 없었고 거주하면 그 곳으로 등기도 가능하였고, 이 사건 토지는 위 최정순 사망한 이후 그의 동생 최효순 원고의 부탁으로 관리하는 기화로 형을 높이어 오래 보존하게 하려는 뜻으로 위 제1항 토지의 갑 제23호증의1~3 과 이사건 토지 까지 가가 ㅋ토지에 관하여 주소를 기재한 것입니다. 

 

(5) 최학사가 대표성이 있는 단체라면 최효순과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최학사는 어떤 단체라고 볼 수 없으며, [갑제6호증의 판결문사본 제10쪽 제31장 (3)항 갑제25호증의 1~4 참조 ] 피고 원심서 2009. 8. 14.제출 답변서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6)  피고 법무법인 태양 변호사 는 원고 와 경주최씨학사당 종중 (전신 : 최고운 선생 학사당관리위원회 또 학사당 숭모회 )과 이 사건 부동산으로 대구지방법원 [갑제21호증 2 (2003가단98443호), 갑제21-3의1, 2 (2005나952호, 2007카기127호) ] 대법원 [ 갑제21호증의4 (2007다10228호), ]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 을 제1을증의2 (2005가단1044호), ] 창원지방법원 [ 갑제14호증 (2008나1297호), ] 각 재판을 해 온 경주 최씨학사당 종중 변호사 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일부 증거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피고는 외관상 한국도로 공사 이지만 내적으로 경주최씨학사당 종중 입니다. 그기 일부 증거까지 제출하고 있습니다. 

 

제 5.  피고 제출 을 제 1호증2, 을 제2호증에 관하여

1.  [을제1호증의2 판결문의 제68면, 을 제2호증 준비서면 제74장 참조 ]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05가단 1044호 토지인도 등 원고 최평열 피고 최정화 사인 판결의 주문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제27장](3) 따라서 원고가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임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 볼 필료 없이 이유 없다, 는 판결은 토지인도 소송을 소유자임을 전제로 한 판결 자체부터 잘못한 판결이다, 아래와 같이 반복되었다.


2.  [ 갑제 14호증 제84면의 창원지방법원 제1민사부 2008나1297호 토지인도등 결정문 원심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05가단1044호 토지인도등 참조]

위사건의 공평한 해결을 위하여 당사자의 이익. 그 밖의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경정한다. 결정사항 1.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각 토지는 인도받은 점을 감안하여 피고에 대한 임료청구를 포기한다. 결정이유 원고명의로 된 이 사건 각 토지에 대하여 원고의 소유임이 추정되고, 피고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그 소유에 대한 추정을 번복할 수 없다고 판단되나 (그 추정력을 번복하기 위하여는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 청구가 인용되어야 하나 그와 같은 청구가 인용되었다고 볼 아무른 자료가 없다)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인도한 점,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임료 상당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 있지 아니하여 임료를 특정할 자료가 충분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원고가 임료 감정도 희망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 변론에 나타나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했다.


3.  [갑제16호증의1, 6, 10, 갑 제18호증의1. 2. 3. 참조 ]

신청자 최정화 는 당초 구원리 520번지 답 중 최평열의 지분 1.025㎡와 구원리557-5번지 최평열의 소유농지 3.229㎡ 를 쌀소득등보존직접지불금 신청을 하였으나 소유주인 최평열 씨 와 임대 계약한 사실이 없으므로 쌀소득보전직접지불금 등록 신청을 할 수가 없음을 인지하고 이에 날인합니다. 그리고 원고 최평열 소유임을 알고 토지위 토지를 돌려 주고는 소작을 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소송을 할 이유도 없다, 하고 있는데,


4.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피고 제출 한 을 제1호증의2 와 제2호증의 피고 태양변호사)  2005가단 1044 토지명도등 사건은  피고 최정화 자신의 확인서를 가야면 사무소에 전달한 이후에는 간여하지 않앗는데, 피고 최정화 가 소송하는 것 처럼 태양 백오기변호사가 임의적으로 한 것입니다.


5.   그렇게 하면서 법원서 소작료 열마를 받아야 하는지 자료를 제출하기로 한 것인데  원고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무관(변호인)이 불리하다며 소취하를 하라며 강조하기에 이상히여겨 법원에 문서열람을 해본적 청구취지변경신청이 되어 있고 이미 결심한 상태라 패소한 것입니다. 원고에 변호인해임과 동시 서류몽땅 찾고 원고 홀로 재판하기로 결심하엿습니다.  

 

6. 원고는 창원지방법원 항소심 2008나1297호 토지명도등 [ 갑제14호증 조정결정 참조 ] 역시 법무법인 태양 담당변호사 변호사 백오기 어는데 소송복대리인 변호사 이민영 처음 법정에 나왔다 재판님에게 대법원에까지 재판해서 패소하고 원고가 승소했는데 어라하는가 묻자 한마디도 못하고 선고일 기일 지정되었는데 선고 전날 피고측에서 서면이 들어오고 조정기일이 정해 젖으나 출석하지 않고 강재 조정절정에 인정한 것입니다. 


7.  원고는 16년동안 반복되는 소송을 해왔는데 피고 한국도로공사 에도 같은 자료응 제출하기 때문에 같은 주장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피고 한국돌공사도 역시 원고로 부터 문서를 받고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와의 분쟁을 알면서 엎고 서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갑제24호증1. 2. 진정서 참조 ]


8.  한국도로공사 변호사 가 경주최씨학사당종중(전신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또는 최학사숭모회 동일단체 임) 의 수임했던 법무법인 태양 변호사 백오기 임윤성 변호사 러써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분의 약점을 흐리게 하고 이용을 하는것입니다. (갑제21-2 제217장, 갑제21호증3-1 제226장, 갑제21-3 제242장, 갑제21호증 제245장 판결문 표지 원고 경주최씨학사당종중 변호사가 법무법인 태양 변호사 입니다,)

 

제 6.  기 타

 1.    원고는 이 소를 청구 하기 전에 법원공탁과 나 한국도로공사 및 경북지역본부 등 (갑제28호증의 1, 2, 3, 갑제29호증의1. 2,) 수차 출급해 줄것을 요그하였으나 법원의 확인 판결이 있으야 한다는 회신을 받고서 회신 내용과 같이 "최학사 는 최정순 과 동인만 주장하면 되는줄로만 알고 하였는데

 

피고는 원고로 부터 1994년경부터 15~6년동안이나 경주최씨학사당종중(전시 : 최고운선생 학사당 관리운영위원회 또는 학사당 숭모회 ) 와의 분쟁을 해서 원고가 승소하였다는 이야기 까지 한 것으로 피고는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원고의 당사자인 경주최씨학사당종중에서 선임했던 태양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들의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고 있습니다.

 

2.  원고는 원심에서 그기 까지 야비한 재판을 할 줄은 생각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재판을 끝난 사건을 또 다시 처음부터 세로한다는 것 까지 말입니다, 

피고 변호사 제출 을 제1호증1.판결문에 대하여는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원고를 자기들 총ㅇ무를 총사하고 있다고 허구진술하여 그것도 (갑제25호증1녹취록) 당시 국회의원에게 전화질을 해서 내사종결이 된 사건을 다시 구속수사 하면서 꾸민 것입니다.

원고는 항소심에서 누구의 소유인지 불명하고 증조부로부터 4대째 관리해왔던점 등 이유로 석방되고 그들이 청구한 민사소송에서 (갑제20호증2. 3판결문참조) 허구 학사당관리위원회 였습니다, 처음 내사종결과 같이 무고한 형사 사건이라 말입니다, 원고는 알면서도 민사에서 승소한 것으로 양보하고 마는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재심을 하지 않습니다.

 

3.  원고는 2009. 12. 2.경 대구법원 합의부 자신의 2009나18227호 소송기록 열람하고 기록표지부터 제227장 까지의 복사신청하고 복사를 해 왔는 바, 종중과 의 모순 되는 내용이 있는 장이 없어 진것을 알았습니다.

(1)  제갑 제20호증1의1 제174장(없음) 에 "피의자가 신라말 학자인 최치원을 제사지내는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총무로 있으면서 위 학사당 건물 등 관련 재산을 관리하면서 위 원원회의 경리업무에 종사하던 자인 바".

(2)  갑 제20호증1의2 제177장(없음) 에 "1996년 형제 78180호 피의자 최평열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에 관한특별조치법위반등, 1997년 1월 30일 일부 혐의없음, 공소권없음"

(3)갑 제21호증1 제216장(없음) 에 "종합하더라도 본건 토지(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386-5, 분할 386-11)가 피의자측과 학사당숭모계(전신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측 중 누구의 소유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태에서(당시 대구지방법원에 2003가단98442호소유권이전등기말소소송을 제기하는 때인데 현재 모두 원고 승소하였음 후술 참조) 피의자가 종중토지가 아닌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여 편입보산금과, 본건 502번지 토지에 대한 매매대금을 반환하지 아니한 것으로 횡령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본건 토지가 종중토지라는 사실 입증할 증거가 부족함, 혐의 없음,  이에 각 주문과 같이 결정함,

 

피의자(원고 최평열) 인 최평열이가 본건 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386-11. 담 최효순의 지분 보상금에 대한 횡령고소 건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총무인양 허위 고소한 모순 없에려고 벤것 같습니다, 

 

4.  학사당관리운영관리운영위원회서 원고를 상대로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1995가합1219호소유권말소송송 판시에서는 결론에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소유권말소 소송에서 (갑 제6호증 제32장(4)이하,) 위 원고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당초부터 이사건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거나 또는 이를 관리해 왔다고 볼 수도 없음이 분명하다, (갑제14호증, 갑제20호증2, 갑제20호증3, 갑제20호증4, 갑제20호증5, 갑제21호증2, 갑제21호증3의1. 2, 갑제21호증4 등 판결문 ) 이후 항소심부터 실체까지 없는 허구단체로 밝졌습니다. 

 

위 3항과 4항을 보더라도 모순이 확연이 들어 납니다.

 

5.  피고는 위와 같은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의 고소사건을 원심에서 제출한 것으로 보더라도 피고 진술은 하나도 받아 드려질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원고의 주장을 충분이 받아 드러서 원고의 소유 학사당을 오래 보존하도록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원고는 선대님들의 큰 업적을 과 후세 대대손손 기리 빛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양심것 살고 잇습니다, 또  道泉 최평열 이란 이름 5자가 (카페, 블로그 검색 하면 볼 수 있음 ) 명예가 달렸습니다. 

 

 원고 최평열 명의로 등기부상 등재된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 유지 목적으로 만련된 토지입니다, 위와 같이 총 11필지 였습니다, 위 재산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홍류동 소재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기리기 위한 재산이며, 원고 최평열 위선사 입니다, 

 

피고 답변서에서 이 부동산은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서" 진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고 소유이라 할 것입니다.

   

 { 참고 : 원고 최평열 소유인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 등에 관련하여 매년 행사하는 춘향행사, 추모행사 및 원고 최평열 직접 관리 상항같은 사진을 볼 수입습니다.{ 다음(한메일) 홍류동 고운 최선생 학사당 농산정 가야서당 / 道泉 최평열 /  http://blog.daum.net/6299842  검색 하면 [ 카테고리 ] 알리는말씀게시글, 광정공(한천)공파족, 악의소송등문서록, 신도비유허비, 홍류동천풍경, 나대자연농원풍경 등 검색  }

 

2009. 12. 14.

항소인 원고 최평열 올림

 

 

대구지방법원 제2민사부   귀중

진정서 및 탄원서

[道泉 최평열]

 

 

 

 

 

 

 

 

 

진정서 및 탄원서

[道泉 최평열]

 

 

 

 

 

 

 

 

 

부동산특별조치법위반 사건부당 한 점, 형사, 민사 판결서 등

 

본 사건의 머 리 말

 

학사당관리위원회가 최평열 상대로 자기들 소유라고 부동산특별조치법 및 업무상횡령죄 등으로 형사 고소하고 난 다음에 자신들단체 소유라고 소유권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형사에서는 학사당관리위원회 소유라고 보고 최평열 총무로 위장한 거짓에 의거 형을 주었으나 민사에서는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최평열 명의로 등기를 하자 그무렵에 고소하기 위하여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학사당등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거나 그를 관리한 사실이 없음이 명백하고, 실체 조차 없음으로 밝혀저 페소판결 선고로 확정되었다, 최평열 선대서 건축 및 매수하여 고운 최치원선생을 기리기위한 것으로 밝혀 졌다 ,현제 부등산 등기부상 소유자이다, !!

첨 부터 이러한 점 알았더라면 고소조차 할 수 없는것으로 경찰 검사 깊이있게 조사 및 판단 하지 못한 점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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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형사 판결서가 아래 민사소송 판결서 를 보면 잘 못 되었음을 입증 할 수있다, 

 

 

 

 

 

 

 

 

 

 

 

 

 

 

 

 

 

 

 

 

 

 

 

 

 

 

 

 

 

 

 

 

 

 

 

 

피의자 최평열은 유죄를 받고도 민사에서 모두 승소했고  

고소한 사이비단체는 위원회, 숭모회, 종중 등 명칭을 3번을 바꾸어 민사청구했으나 모두 패소확정했다.

경주최씨대종회 사무총장(국장)님 감사합니다. 

 

경주에 있는 경주최씨 대종회 사무총장님 안녕하십니까 ?

늘 고마워서 이렇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래전부터 고운 최치원 선생의 해인사 경내 유적에 대한 상담을 받은 즉시

저에게 전화 해주시고 그래서 서로 알게 되어  경주에 고운 최치원 선생 선조님을 모신 상서장 춘향행사

 때인 매년 4월 16일에는 참배하로 가기도 했지요...

 

그 중년인 1994년경 도천 최평열과 가칭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와 의 소유권 분쟁이 야기하면서 가칭 단체들의 협조를 부탁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말씀만 하시고 가칭 단체에 가담하지 않으시고

 경주 최씨 대종회 를 구준히 발전 시켜 왔셨네요..,

 

존경하는 경주최씨 대종회 사무총장 최병화 님은 늘 중립에 서계시고

 해운 최치원 선조님을 기리는 상서장을 잘 보존하시는 마음 감사드립니다.

 

나는 경주시내를 지나오다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찍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따뜻한 위로의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항상 깊은 마음으로 늘 좋은삶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경주최씨대종회 사무총장(국장) 최병화 님께  

이 꽃을 올립니다.

 

도천 최평열 

 

 

 

 

 

 

 

 

 

 

 

 

 

 

 

 

 

 

 

 

 

 

 

 

 

 

그동안 보살퍼 주심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꽃을 받으세요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서 [대법원 확정판결된  부동산 가처분 부당하다]


체권자 :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운동 88 전도교회관

대표자 최시중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양

담당변호사 백오기


체무자 최평열

등기부상주소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

주민등록상주소 대구시 남구 대명동


를 상대로 가처분 하였으나 


이미 경주최씨중앙종친회 산하의 단체라는 1994년경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 가 고소권조차 없는데 고소권 부동산을 매수하고 관리한 것처럼 거짓말 하고 구속수사토록 하고도 그 결과 1995년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서의 95가합1210호 소유권말소등 제1심에서 청구인 원고가 부동산을 매수하였다거나 관리했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기각한 사실이 있고 제2심 항소에서는 소송 당사자능력조차 없다고 소를 각하판결 선고하고 제3심 상고 대법원에서 상고이유 없고 원심판결 오심이 없다고 상고 기각판결 선고확정 하였다.


그럼에도 위에 패소한 최고운선생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는 최학사숭모계라고  이름을 바꾼 뒤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00가단3366호 소유권보존등기 말소 등에서 당사자인 원고가 사위소송임을 알고 소송을 취하하였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위 최고운선생 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는 경주최씨학사당종중 이라고 이름 바꾸고 대구지방법원 2003가단 98442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으로 청구하였으나 제1심에서 원고실체도 없을 뿐 아니라 동일사건으로 기판력이 해당함으로 청소소가 각하 되었다, 그 제2심 항소심에서 기각되고 대법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고 확정한 사건을 다시 가처분을 한 것이다.


이런 행위를 어떻게 하였나 말입니다, 그런데 제삼자인 경주최씨중앙종친회가 왜 욕심을 내고 대드는지 알 수없는 일입니다.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대표자 최시중 씨의 단체는 1957년 4월 16일 경주시 인왕동 소재 상서장 (해운 최치원선생의 영정을 모신 곳) 춘향행시 종친회 창립을 결의하고, 그해 가을인 1957년 10월 19일 서울 신광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총회 개최하여 회칙을 제정하고 사무실을 서울 중구 다동에 개설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이사를 한 후 1995년 6월 10일 현재의 사무실로 옮겼다고 한다.


이 때 전국 1백70여개 시군지역 종친회 및 계파 종친회 결성하였으나 최형우 의원께서 병환으로 대권을 포기하고부터 허지 부지 해 졌다.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가 나의 토지를 소송 중간에 무단 점거하여 회원에게 사용케 하였기 때문에 소송이 확정된 뒤 돌려달라고 토지인도 소송을 법률구조공단에 위임하고 있는데 뜻밖 소청구취지를 몰래 바꾸고 패소를 하게 하였던 것을 변호사를 해임시키고 홀로재판을 하였다,


이 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아니하면 이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위와 같이 경주최시중앙종친회가 설립 되기 이전인 1927년 1936년 1951년경에 나의 선대께서 건축하고 구입한 토지들을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하고 유림의 춘향행사를 하고 있는것을 어떻게 1993년경에 소송하기위해 만든 최고운선생학사당관리운영위원회와 손을 잡고 무도한 짓을 하고 있는지 하늘이 무섭지 않는가 묻고 싶구나.. 나의 부동산 가처분을 취소하시길 바랍니다.

 

도천 최평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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