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 ,,,,,,,,,,,,,,,,,,,,,,,,,,,,,,,,,,,,,,,,,,,,,,,,,,,,,,,,,,,,,,,,,,,,,,,,,,,,,,,,,,,,,,,,,,,,,,,,,,,,,,,,,,,,,,,,,,,,,,,,,,,,,,,,,,,,,,,,,,,,,,,,,,,,,,,,,,,,,,,,,,,,,,,,,,,,,,,,,,,,,,,,,,,,,,,,,,,,,,,,,,,,,,,,,,,,,,,,,,,,,,
알리 는 말씀
울 방 방 문 감 사 드 려 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나이다
도천 최평열 올림
.............................................................................................................................................................................
...............................................................................................................................................................................
고운 최치원이 홍류동에 반해 계곡 물소리에
귀먹고, 갓과 신만 남겨둔 채 신선이 되어 사
라졌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 옛 가을 정취를
고스란히 새겨놓은 농산정에서 고운의 시 한
편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용문폭포 주위도
큰 키의 낙엽송과 잣나무, 단풍나무들로 장관
이다. 단풍으로 물든 해인사와 겨울 채비에
분주한 스님들의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는 맛
보지 못하는 넉넉한 운치를 전해 준다.
;;;;;;;;;;;;;;;;;;;;;;;;;;;;;;;;;;;;;;;;;;;;;;;;;;;;;;;;;;;;;;;;;;;;;;;;;;;;;;;;;;;;;;;;;;;;;;;;;;;;;;;;;;;;;;;;;;;;;;;;;;;;;;;;;;;;;;;;;;;;;;;;;;;;;;;;;;;;;;;;;;;;;;;;;;;;;;;;;;;;;;
상세정보
가야산자락의 최고 절경지가 홍류동천이다. 지금은 차로 단숨에 지나쳐 버리는 관계로 그 면목을 제대로 느껴보는 이가
적지만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그 경관에반해 말년을 보내다가 신선이 되어 사라진 곳이라 할 정도로
그 경관이 빼어나다. 홍류동 계곡이 본 원류는 가야산 입구의 구원리 부근에서부터 해인사 앞에 까지 이르는 10여리. 특히
이 계곡은 가을이면 단풍이 맑은 계류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해서 홍류(紅流)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계곡과 주변
산허리가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홍류동계곡에서도 최고의 절경지는 농산정 부근. 차로 달리다
찻길옆으로 주차장이 늘어서 있고, 계곡 건너로 아담하고 소박한 모양의 정자 하나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계곡을
거슬러 작은 다리가 놓여있고, 아래로는 작은 폭포 물줄기가 넓은 암반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정자 주변에는 울창한 솔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정자에 서면 아래로 계곡의 굽이와 위로 겹겹이 쌓인 산그림자들이
동양화폭 속에 들어앉은 듯 싶어진다. 신선으로 사라졌다는 고운 최치원이 살았다는 절경지가 바로 이곳 농산정이다.
지금도 농선정에는 고운의 흔적이 있는데, 농산정 아래의 바위에는 '나는 청산에 들면 나오지 않는다"고 끝맺은 고운의
친필<입산맹약시>가 새겨져 있고, 농산정 옆에는 고운의 제가야산독서당시(題伽倻山讀書堂詩)가 새겨진
제시석(題詩石)을 세워두어 그 역사를 보여준다.
또한 홍류동천의 상류에서는 고운 최치원이 살던 초막이 있었다고 하고 그 자리에 법당을 지어 고운암이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단풍의 아름다움은 농산정에서는 볼 수 있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은 농산정에서 조금더 올라가서
만나는 길상암 주변. 말 그래도 산과 계곡이 함께 물드는 홍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길상암을 주변으로
아래쪽으로는 분옥폭포와 제월담과 완제암이 있고, 바로 위로는 낙화담과 천석대가 연이어 있어 홍류동에서는 농산정과
더불어 최고의 절경지로 손꼽힌다. 천석대 앞에 주유소가 개울을 막고 있어 다소 눈에 거슬리는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홍류동에는 19명소가 있다.
;;;;;;;;;;;;;;;;;;;;;;;;;;;;;;;;;;;;;;;;;;;;;;;;;;;;;;;;;;;;;;;;;;;;;;;;;;;;;;;;;;;;;;;;;;;;;;;;;;;;;;;;;;;;;;;;;;;;;;;;;;;;;;;;;;;;;;;;;;;;;;;;;;;;;;;;;;;;;;;;;;;;;;;;;;;;;;;;;;;;;
[ 홍류동 계곡 ]
위 치 :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4Km 계곡으로 가을단풍이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주위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치는 소리는 최 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하여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놓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남아 있고 농산정과 시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합천 8경중 제 3경이다.
;;;;;;;;;;;;;;;;;;;;;;;;;;;;;;;;;;;;;;;;;;;;;;;;;;;;;;;;;;;;;;;;;;;;;;;;;;;;;;;;;;;;;;;;;;;;;;;;;;;;;;;;;;;;;;;;;;;;;;;;;;;;;;;;;;;;;;;;;;;;;;;;;;;;;;;;;;;;;;;;;;;;;;;;;;;;;;;
관 리 청 :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관리사무소(055-932-7810) 인 터 넷 : http://www.npa.or.kr/kaya
개 요 : 가야산 국립공원입구에서 해인사까지 이르는 4km의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홍류동계곡이라 한다. 홍류동계곡에는 최치원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놓고 신선이 되어 버 렸다는 전설을 말해주는 농산정과 시를 새겨놓은 큰 바위, 그리고 학사당, 낙화담 등의 정자와 연못, 기암들이 즐비하다. (134 자동응답 안내 316)
주요 문화재 - 농산정(문화재자료 172호) 주변 관광지 - 청량사(3km),
등산코스 : 1)신부락-해인사-용탑선원-마애불상-대피소-정상 (5.5 km, 왕복 5시간 소요) 2)신부락-해인사-용탑선원-대피소-가야산 정상(5km, 왕복 4시간소요) 3)백운집단시설지 - 가야산 정상 (4.3㎞, 왕복 4시간 30분 소요) |
도로안내 : 88올림픽고속도로 해인사I.C. - 해인사방면 1084번 지방도- 59번 국도
#8211;가야산국립공원 매표소
현지교통 : 대구서부터미널 → 해인사 방면(종점하차) /
20분간격, 1시간소요 |
;;;;;;;;;;;;;;;;;;;;;;;;;;;;;;;;;;;;;;;;;;;;;;;;;;;;;;;;;;;;;;;;;;;;;;;;;;;;;;;;;;;;;;;;;;;;;;;;;;;;;;;;;;;;;;;;;;;;;;;;;;;;;;;;;;;;;;;;;;;;;;;;;;;;;;;;;;;;;;;;;;
홍류동계곡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에 있는 홍류동 계곡은 해인사 입구에 있는 계곡으로 주변의 단풍이 흐르는 물에 붉게
그림자가 진다하여 홍류라 이름하였다 한다. 그리고 홍류동계곡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까지 이르는
계곡으로 가을단풍이 너무 붉어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홍류동계곡이라 한다. 주위의 송림 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최치원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하며,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
다는 전설을 말해 주듯 농산정과 시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 가는 길 : (도로) 대구서부-88고속도로- 해
인사IC-야로 -가야(해인사), (현지교통) 대구서부, 부산등지에서 직행버스운행 (2∼3시간 소요)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면적 약 66 km2. 가야산은 해인사를 비롯한 사찰 ·고적들이 많아, 조선8경의 하나로 꼽혀 오다가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에는 해발고도 1,000 m 정도까지 300여 종의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산정에는 평지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수식물이 자라며, 100여 종의 조류와 진귀한 동물이 서식한다. 주봉 꼭대기에는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우비정이 있고, 산허리에는 마애불입상(보물 222)이 있다. 그 밖에 해인사 서쪽 약 2 km의 계곡에 있는 이름난
용문폭포 등 뛰어난 경치가 많다.이곳의 백미는 해인사와 그 입구를 이루는 홍류동계곡이다. 대장경판고가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4 km쯤 들어간 산기슭에 있는데, 그 구간에는 어귀의 무릉교를 비롯해서 농산정 ·제시석 ·분옥폭
·제월담 ·회선암 ·낙화담 ·첩석대 등이 차례로 있다. 농산정과 제시석은 만년을 이곳에 숨어 산 신라의 최치원에 유래하는
유적으로, 농산정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사각이고, 제시석은 그의 농산시를 새긴 반석이다. 그 밖에 계곡을 이루는 절벽
·암석과 맑은 물 및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인사 외에도 12암자가 있으며, 일대에서는 잣
·송이버섯 ·산나물 등이 많이 난다.
;;;;;;;;;;;;;;;;;;;;;;;;;;;;;;;;;;;;;;;;;;;;;;;;;;;;;;;;;;;;;;;;;;;;;;;;;;;;;;;;;;;;;;;;;;;;;;;;;;;;;;;;;;;;;;;;;;;;;;;;;;;;;;;;;;;;;;;;;;;;;;;;;;;;;;;;;;;;;;;;;;;
가야산자락의 최고 절경지가 홍류동천이다. 지금은 차로 단숨에 지나쳐 버리는 관계로 그 면목을 제대로 느껴보는 이가
적지만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그 경관에반해 말년을 보내다가 신선이 되어 사라진 곳이라 할 정도로
그 경관이 빼어나다. 홍류동 계곡이 본 원류는 가야산 입구의 구원리 부근에서부터 해인사 앞에 까지 이르는 10여리. 특히
이 계곡은 가을이면 단풍이 맑은 계류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해서 홍류(紅流)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계곡과 주변
산허리가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홍류동계곡에서도 최고의 절경지는 농산정 부근. 차로 달리다
찻길옆으로 주차장이 늘어서 있고, 계곡 건너로 아담하고 소박한 모양의 정자 하나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계곡을
거슬러 작은 다리가 놓여있고, 아래로는 작은 폭포 물줄기가 넓은 암반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정자 주변에는 울창한 솔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정자에 서면 아래로 계곡의 굽이와 위로 겹겹이 쌓인
산그림자들이 동양화폭 속에 들어앉은 듯 싶어진다.
신선으로 사라졌다는 고운 최치원이 살았다는 절경지가 바로 이곳 농산정이다.
지금도 농선정에는 고운의 흔적이 있는데, 농산정 아래의 바위에는 '나는 청산에 들면 나오지 않는다"고 끝맺은
고운의 친필<입산맹약시>가 새겨져 있고, 농산정 옆에는 고운의 제가야산독서당시(題伽倻山讀書堂詩)가
새겨진 제시석(題詩石)을 세워두어 그 역사를 보여준다.
또한 홍류동천의 상류에서는 고운 최치원이 살던 초막이 있었다고 하고 그 자리에 법당을 지어 고운암이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단풍의 아름다움은 농산정에서는 볼 수 있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은 농산정에서 조금더 올라가서
만나는 길상암 주변. 말 그래도 산과 계곡이 함께 물드는 홍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길상암을 주변으로
아래쪽으로는 분옥폭포와 제월담과 완제암이 있과, 바로 위로는 낙화담과 천석대가 연이어 있어 홍류동에서는
농산정과 더불어 최고의 절경지로 손꼽힌다. 천석대 앞에 주유소가
개울을 막고 있어 다소 눈에 거슬리는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홍류동에는 19명소가 있다.
;;;;;;;;;;;;;;;;;;;;;;;;;;;;;;;;;;;;;;;;;;;;;;;;;;;;;;;;;;;;;;;;;;;;;;;;;;;;;;;;;;;;;;;;;;;;;;;;;;;;;;;;;;;;;;;;;;;;;;;;;;;;;;;;;;;;;;;;;;;;;;;;;;;;;;;;;;;;;;;;;;;;;;;;
5월 원정 등산은 가야산으로 정하고 우리는 5월 30일 홍영표등산회장, 한문환등산대장, 이성목고문 원용순 회원,
최병돈회원 그리고 나 모두 6명이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 우리의 숙영지 청원정에 오후 2시에 도착 했다.
청원정은 아버님과 아버님 친구 몇분이 1976년에 지으신 공동 별장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후손이 맡아서
관리하고 있고 회원이면 누구나 머물수 있는 한옥 정자다,
여장을 풀고 해인사를 둘러 보기로 하고 대문을 나서니 길옆이 그유명한 홍류계곡이고 신라시대의 유명한
최치원 선생의 기념비와 사당이 있다.
신라 말기 학자·문장가·경주(慶州)최씨 시조이며 자는고운(孤雲)·해운(海雲)이다.
신라 경문왕 9년(AD 869) 12세의 나이로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AD874년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여 당나라의
관리를 거처 AD665년에 귀국 모국 신라의 조정에서 관리로 지내다 시무 10조를 (1. 새 궁궐로 옮길 것. 2. 관리의
수를 줄이고 녹봉을 적당히 할 것. 3.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빼앗은 토지는 돌려줄 것 4. 선량한 관리를 임명하고 세금을
적당히 할 것. 5. 공물 진상을 금하고 안찰사의 임무를 명확히 할 것,6.승려의 왕궁 출입과 고리대업을 금할 것.
7.탐관오리를 징벌하되 잘한자는 상을 줄 것. 8.관리의 사치를 금할 것. 9.비보 사찰
이외에는 모두 없애고 함부로 절을 세우는 것을 금할 것. 10.신하의 간언을 용납하고 바른말 하는 관리를 등용할 것)
상 소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자기의 개혁안이 실현될수 없음을 깨닫고 관직을 버리고 이 홍류동 계곡에서
여생을 보냈단다 그후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문창후(文昌侯)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고
지금도 우리가 보는 비석에 이 내용이 적혀있다
비문을 보다보니 지금이나 옛날이나 기득권층의 권력 남용과 국민을 위하는 뜻은 없고 자기 권력 유지에
급급 했음을 알게 되니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옛과 지금이 같지 않은가.
그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이 홍류동 계곡에는 최치원 등이 소요하며 명명했다는 16개의 절승지가 있다.
(1)갱백원, (2)축화천,(3)무릉교, (4)칠성대, (5)홍류동천, (6)농산정, (7)완제암, (8)광풍뢰, (9)퇴적봉, (10)금풍뢰,
(11)체필암, (12)분목폭포, (13)제월담, (14)낙화담, (15)첩석대, (16)화선암 등이 있는데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체취를 느껴본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우리는 부랴부랴 해인사를 둘러보고 앞산 매화봉(남산제일봉1010m)을 서둘러
등산하고 내려 오니 어느덧 산밑에 있는 청원정에 어둠이 깃든다.
옷닭,닭도리탕에 저녁을 마친후 내일의 가야산 종주를 위해서 일찍 자기로했다.
새벽 4시 한문환 대장은 잠도 없는가보다 어느새 일어나 대원들의 아침 식사를 마련 하고 있다. 4시반에 조찬을 마친
우리는 부랴부랴 수도암을 향해 출발 하는데 한대장은 우리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한대장 친구 이원석씨와 그지방 전문
산악인 박칠화씨에게 연락해서
그 두분이 오셨다.
박칠화씨는 대전 이남의 산에 대해서는 그지역의 제1인자라고 한다. 오전 6시50분 우리는 수도암을 출발 우리에게는
처음 경험 하는 대 장정(?)의 산행이 시작 되었다. 우리가 갈길은 수도암-수도산(1316.8m)-단지봉(1326m)-
두리봉(1134.4m)-상왕봉(마두봉1430m)-칠불봉(1433m)-백운리 매표소까지 지도상 직선 거리 약 24Km 보행거리
약 36Km 이었다.
소요시간은 약 13시간 30분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험악하고 가장 먼거리이며 그리고 가장 긴 시간이었다
전문 산악인 박칠화씨는 묵묵히 우리 뒤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이끌어 주셨고 우리를 위해서 밑반찬, 토스토, 딸기,
녹차얼란물, 떡, 그리고 쥬스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산행길을 안내 하셨는가 하면 이원석씨는 우리를 위해서 쌀과
참외를 보내 주셨다. 특히 그분의 선친과 나의 선친께서는 청원정 회원으로 각별히 친하게 지내셨고
우리 집에도 오셨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 3대 사찰의 하나인 해인사경내에 있어서가 아니라 우연이 아니고 인연이 아닌가 생각 한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인(因)과 연(緣). 직접적으로 결과를 낳는 <인>에 대하여,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연>이라고 한다. 때로는 인 또는 연만으로 인과 연 양자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또 인연이라고 하여 어느 한 쪽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단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因此有彼 無此無彼 此生彼生 此滅彼滅) 라고 하는 인 이는 내가 존재하기에 생겨 나는 것이요 그분들과
만남도 내가 있기에 생기는 시공적 합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내가 있기에 우리 6명이 함께 가야산을 가는 인연이 생기며 우리가 있기에 또한 그 2분을 만나니 이는 불교의
인연의 순리라면 우리와 이선생 박선생의 만남 모두가 불교의 공(空)이 아니겠는가. 또한 인연도 시간의 변화에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는데 공사상도 텅 비어서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인연에 의해 새로운 존재가 생성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본질은 텅 빈 것으로 이해해야 한답니다 그 2분과 다시 만나면
초면의 어색한 분위기가 아니고 구면의 정이 있으리니 이 또한 채워진 공 그러나
해외로 이민 가거나 생을 다하면 텅 비워지니 色卽是空 이요 空卽是色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왕왕이 물질과 권력을 추구 하는데 이 모두 변화 하니 성취와 더불어 비워질 터이니 넓고 멀리 시야를
돌려 이웃을 사랑하는 인연을 맺었으면 한다.
2005.06.04 19:16
;;;;;;;;;;;;;;;;;;;;;;;;;;;;;;;;;;;;;;;;;;;;;;;;;;;;;;;;;;;;;;;;;;;;;;;;;;;;;;;;;;;;;;;;;;;;;;;;;;;;;;;;;;;;;;;;;;;;;;;;;;;;;;;;;;;;;;;;;;;;;;;;;;;;;;;;;;;;;;;;;
;;;;;;;;;;;;;;;;;;;;;;;;;;;;;;;;;;;;;;;;;;;;;;;;;;;;;;;;;;;;;;;;;;;;;;;;;;;;;;;;;;;;;;;;;;;;;;;;;;;;;;;;;;;;;;;;;;;;;;;;;;;;;;;;;;;;;;;;;;;;;;;;;;;;;;;;;;;;;;;;;;;
닫기 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