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최씨의 시조이신 소벌도리공께서 처음으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 고허촌의 대인이 되시었는데 이 때에 옛 조선유민이 동해 산곡간에 흩어져 육촌을 이루어 집단으로 살고 있었으니 이를 진한육부라 하였다. 그 당시 임금이 없고 육촌장만 있었으므로 소벌도리께서 제촌장(諸村長)들과 유덕한 임금을 세울 것을 결의한 후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양산(陽山) 밑 나정(羅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땅 위에 서리고 붉은 알 하나가 있으므로 이를 쪼개어 보니 동남(童男)이 알속에서 나왔다 소벌도리께서는 천자의 연생으로 생각하고 동천에 목욕시켜 정성껏 양육하여 십삼세가 되던 (서기전57년) 갑자 여름 사월 병진에 오촌장과 더불어 왕으로 추대하니 곧 신라개국시조왕인 혁거세이시다. 그 후 유리왕 9년(서기32년) 임진에 신라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이어서 사성하였는데 양산부를 양부라하여 그 姓을 이(李)라 하였고 고허부를 사량부라하여 그 姓을 최(崔)라 하였으며 대수부를 점량부라하여 그 姓을 손(孫)이라 하였고 우진부를 본피부라하여 그 姓을 정(鄭)이라 하였으며 가리부를 한지부라하여 그 姓을배(裵)라 하엿고 명활부를 습비부라하여 그 姓을 설(薛)이라 하였다 사진은 나정입니다.
최(崔)자의 뜻》崔는 높을 山과 사람 人,흙 土를 두 개 포갠 圭자로 형성된 문자이며 이 규(圭)자는 천자에게 받은 땅을 다스린다는 뜻과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내리던 신표의 뜻으로 위로는 뫼 山,아래로는 사람 人,흙 土를 두 개 합친 최(崔)자는 하늘아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인신 최고의 신분표시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소벌도리(蘇伐都利)는 정씨(鄭氏)의 조상도 되며 진주 소씨(蘇氏) 시조도 소벌도리라고 밝히고 있고 본피부의 성을 최씨로 명기되어 있습니다.그러나 그 세계(世系)를 구체적으로 밝힐 만한 문헌은 없고 삼국사기와 서거정이 왕명을 받아 성종7년에 완성한 삼국사절요에 보면 삼국사기와 일치함을 알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원문 삼국사기원문1 돌산고허촌장소벌도리비문(이비문은 사단법인경주최씨대종회의 옛명칭인 사
단법인고운최선생유적보존회에서 경주 금오산 북쪽 산기슭 옛터에 빗돌을 세워 건립했으며 향사일은 매년 음력팔월십칠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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