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천강 문학상 시상식 -오늘 오후 2시 의령군 충익사 경내에서 봉행

 

제2회 천강 (망우당 곽재우장군)문학상 시상식

           오늘 오후 2시 의령군 충익사 경내에서

의병장 천강 망우당 곽재우장군의 얼을 기리기 위해 의령군이 지난해 부터 공모해온 제2회 천강문학상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을 오늘 10월 5일 오후 2시 충익사 공원에서 갖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회원들께서는 참석하여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금년도 아동문학부문은 당회 운영위원인 김종상 부이사장과 임신행 원로회원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아동문학부문 대상을 수상한 박재광 작가의 동화 돌배나무 두 그루 원고를 입수하여 공개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회  사무총장 백운 곽영석

                     

 

경북 의령군 제정 제2회 천강(의병장 곽재우)문학상동화부문 당선작품

 

                 돌배나무 두 그루

 

                                                                박 재 광

 

 창문 살에 갈라진 햇살이 할아버지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눈을 부비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벌써 아침인겨?’

 툇마루로 나온 할아버지는 마당에 있는 돌배나무를 보며 앉았습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돌배나무 두 그루는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두 돌배나무는 30년 전 산에서 작은 나무를 캐어와 기른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돌배할아버지, 아내를 돌배할머니라고 부르게 한 나무들이었습니다. 그 중 왼쪽 나무는 할머니나무, 오른쪽 나무는 할아버지 나무였습니다. 자식처럼 나무를 아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끔 자신의 돌배나무가 낫다고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부터 할머니 나무는 시름시름 말라갔습니다. 이듬 해 할아버지 나무도 서서히 마르더니, 개나리가 파란 옷으로 갈아입는 지금도 앙상한 가지만 보인 채 서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툇마루 앞에 있던 양동이를 들고 부엌을 드나들며 두 나무에 물을 흠뻑 부어주었습니다. 그때 대문이 부서질 듯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할아버지, 돌배할아버지”

 “누구여?”

 배꼼이 열린 문 앞에는 예전에 도축장에서 같이 일하던 김씨아저씨가 서 있었습니다.

 “뭔 일이여?”

 “사장님이 좀 보자는 데요.”

 할아버지는 예전에 일거리를 부탁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문을 열어 김씨아저씨를 반겼습니다.

 “그려? 조금만 기다려.”

 김씨아저씨를 따라 할아버지는 도축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축사 울타리 너머로 소들이 할아버지를 멀뚱히 쳐다보았습니다. 축사 옆 도축하는 곳엔 소를 잡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소들은 목을 치켜들고 뻗대다가 우악스럽게 휘둘러대는 커다란 망치에 쿵쿵 쓰러져 갔습니다.

 ‘짐승을 저리 잡으면 쓰나.’

 할아버지의 눈이 쓰러지는 소들에게 붙잡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얼른 갑시다.”

 김씨아저씨의 손에 끌려 할아버지는 조립식 건물의 2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던 도축장 사장이 알은 체를 하며 일어섰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뚱하게 대하던 사장이 반갑게 맞이하자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응, 그냥저냥 살고 있지.”

 “아들은 연락 좀 오고요?”

 “연락이 끊긴지 꽤 됐지.”

 “그러게 무슨 사업한다고 아버지 재산까지 다 날려버리고…….”

 문득 아들 생각에 할아버지는 눈을 감았습니다. 두 해전, 하나 뿐인 아들은 사업을 한다고 할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재산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작년 돈이 더 필요하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생전 연락 한번 없다가 아쉬울 때나 연락하는 아들이 괘씸하기도 하고 더 이상 줄 돈도 없는 할아버지는 아들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 후로 더 이상 연락이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아저씨 지난번에 일거리 부탁하셨잖아요?”

 “그려. 할 일이 좀 있는가?”

 “내일 도축장으로 나오세요. 방송국에서 할아버지를 보러 나온다고 하거든요.”

 “뭐, 나를?”

 사장은 신문을 접고 할아버지 앞에 앉았습니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어디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나 봐요.”

 “그려? 그럼 내가 뭔 일을 하면 되는가?”

 “뭐긴 뭐겠어요? 소 잡는 일이죠. 하실 수 있겠어요?”

 “그으럼. 30년간 해온 일인데.”

 “그럼 식사도 든든히 하시고 내일 두시까지 오세요.”

 사장이 내민 봉투를 들고 할아버지는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김씨아저씨가 할아버지를 배웅한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사장님, 뭐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돈까지 줘가며 티비에 나가시려고요?”

 “너, 도축장 옆에 새로 한우 식당 문 연 거 알아 몰라?”

 “당연히 알지요.”

 “도축장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 식당이 광고가 되겠니, 안 되겠니?”

 그제야 김씨아저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해가 하늘 꼭대기를 지나 살짝 기울어 갈 쯤 할아버지는 도축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할아버지 빨리 좀 오시지, 벌써 방송국에서 와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김씨아저씨 손에 이끌려 사무실 뒤뜰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 있었습니다. 사장이 다가와 한 젊은 남자에게 할아버지를 이끌고 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 방송국에서 나온 김건우라고 합니다.”

 한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 반갑네요.”

 “이거 괜히 불편을 드린 건 아닌 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소에게 다가갔습니다. 김씨아저씨는 소의 목줄을 잡고 서 있었습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애써 외면하고 도구를 챙겨 소에게 다가갔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쳐다보았습니다. 할아버지도 말없이 소의 눈만 쳐다보았습니다.

 “저 할아버지가 소 잡는 법이 아주 독특하죠.”

 사장이 옆에 있던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네. 근데 저도 처음 조사할 때부터 믿기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소와 이야기를 나누나요?”

 “그거야 할아버지와 소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소의 눈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소가 고개를 숙이고 그때 번개같이 내려치죠.”

 여러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침묵의 시간만 길어졌습니다. 당황한 사장은 방송국에서 온 남자에게 다시 말을 건넸습니다.

  “보통 소들은 자기가 죽는 걸 알고 고개를 뻗대고 몸부림치는 데 할아버지가 잡을 땐 얌전하죠.”

 “그것 참 신기하군요.”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가 잡은 소들은 육질이 좋아 늘 특일등급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소의 눈만 바라본 채 말도 어떤 행동도 없었습니다. 소의 눈에는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이 가득하였습니다.

 ‘이제 갈 길로 가야지.’

 소의 고개는 여전히 뻣뻣이 하늘로 향해 있었습니다.

 ‘혹시?’

 할아버지는 천천히 발을 옮겨 소의 배를 쳐다보았습니다.

 “어이 김씨, 이 녀석 송아지 난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뱃가죽이 쳐져 있는 게 보름 안짝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이때 사장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송아지를 못 잊어서 죽으려고 안 하네.”

 “아저씨 주변을 좀 둘러보세요. 이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소 잡는 거 보겠다고 서울에서 온 거라고요.”

 “그래도 저 놈은 살려는 힘이 너무 강해.”

 사장의 얼굴은 이미 노을보다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누구 망신시킬 일 있어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사장의 얼굴도, 소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개만 떨어뜨렸습니다.

 “아저씨, 이번 일 끝나고 조그만 일자리 하나 내드릴 테니 잔말 말고 빨리 잡으세요.”

 “…….”

 “아저씨 무조건 잡아요, 지금.”

 할아버지는 다시 소를 쳐다보았습니다. 소의 눈에도, 소를 닮은 할아버지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이젠 흐릿하게 일그러진 서로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말로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할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도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할아버지의 손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소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갔습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눈물로 가득 찬 소의 눈동자에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비췄습니다. 소는 힘껏 머리를 치켜 올렸습니다. 놀란 김씨아저씨가 바짝 줄을 잡아 당겼지만 소는 더욱 세게 머리를 치켜 올렸습니다. 할아버지의 머리 바로 위에서 잠시 멈췄던 도끼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왔습니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소 역시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도끼는 소의 머리 대신 옆 흙바닥에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돌배할아버지!”

 김씨아저씨의 부름에도 할아버지는 말없이 걸어 나갔습니다.

 대문을 들어서서 집으로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는 돌배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두 돌배나무가 서로 같은 모습으로 야위어 있었습니다. 한참 나무를 들여다보던 할아버지는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할아버지 나무에다 듬뿍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어와 할머니 나무에도 주었습니다.

 “봄장마가 너무 길구나.”

 양동이를 처마 밑에 두고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조그만 앉은뱅이책상 위엔 어제 사장에게 받은 하얀 봉투가 놓여있었습니다. 봉투를 집으려던 할아버지는 다시 손을 거두고 이불을 폈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리 피곤한지.”

 이불 위로 누운 할아버지의 눈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할아버지, 돌배할아버지.”

 낯익은 소리에 할아버지는 눈을 떴습니다. 아직 창밖은 밝았습니다.

 “누구요?”

 “할아버지 얼른 문 좀 열어봐요.”

 대문밖엔 김씨아저씨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뭐 때문에 왔는가?”

 “어제 할아버지 가고 도축장이 아주 난리가 나버렸어요.”

 “어제?”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창밖이 밝아 잠깐 낮잠을 잤으려니 했는데 벌써 아침이었습니다.

  “허허. 하루를 꼬박 잠들어 있었구먼.”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네. 근데 왜 왔다구?”

 김씨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어제 할아버지가 가고 난리가 났었다구요. 사장님이 사정사정해서 방송국 사람들 하루 더 잡았거든요. 아무튼 할아버지 빨리 데리고 오래요.”

 할아버지는 그제야 어제 일들이 떠오른 듯 말없이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는 할아버지 손엔 봉투 하나가 들려있었습니다.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네. 요거나 사장한테 갖다 주게.”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할아버지는 억지로 김씨아저씨를 대문 밖으로 떠밀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이젠 도축장에서 일 못해요.”

 “됐네. 상관없네.”

 할아버지는 문을 닫고 툇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눈에 무언가 반짝하며 빛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내려왔습니다. 또다시 빛이 반짝였습니다. 이번엔 할아버지도 그 빛을 놓치지 않고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연두빛이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아주 작은 연두빛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나무에도, 할머니 나무에도 작은 새순들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 빛보다 더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무보다 할머니나무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잘 한 일 맞지?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할멈뿐이 없구먼.’

 할아버지는 처마 밑에 있던 양동이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가득 받아왔습니다. 양동이 속에서 찰랑이는 물살 위로 봄 햇살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본심심사위원:김종상, 임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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