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불교청소년자원봉사수기 공모 입상작품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춘천 유봉여고3 김효진
고 1 때 제비뽑기로 가게 된 수련회에서 '1분 스피치'라는 활동이 있었다. 모두가 모인 커달나 강당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누구든지 나와 1분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 무슨 용기었는지(이런 걸 요즘 말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 한다) 무대위로 올라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용하고, B형의 탈을 슨 A형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17살의 나였다. 그 날, 횡설수설. 무슨 말을 했었는지 조차 모르는 1분동안의 떨림 속에서 기억에 남는 건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한 마디였다. 조금은 외진 곳에 세워진 건물. 그 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이름이었던, 봉사만 많이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이 조금 더 또렷한 이름으로 다가오게 된 계기가 된 곳. 그 곳에서 나는 참 잊지 못할 분을 만났다.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셨는데 왠지 모르게 친할머니가 생각나는 분이셨다. 은색의 휠체어와 몸을 스스로 지탱하실 수 없어 대어놓은 보조기구, 처음 보는 내가 낯설으신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던 할머니. 원래가 살갑지 못한 성격인지라 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할머니 다섯 분의 잔심부름뿐이었다. 반나절 그 방안에 있으면서 나는 과연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색함과 낯설음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고민의 시간은 흘러 다음 봉사 날이 되었을 때 다른 곳이 되길 하는 바람이 컸지만 내게 배정된 곳은 지난 번과 같은 평화의 방이었다. 어쩌면 나는 피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모르는 사람들의 생전 처음 보는 모습들. 병에 들어 계신 할머니들의 모습이 조금은 두려워 막연히 꿈꿔왔던 것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후 몇 번의 봉사활동을 가면서 나는 치매라는 병이 드라마나 영화에서와 같이 아름답게 비춰지는 것이 아닌 슬픈 병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을, 가족을, 인연을 잊어가는 병. 친구들과 장난으로 했던 ‘야~ 나 치맨가봐~ 자꾸 잊어버려’했던 말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그 때 쯤 이었다. 이야기라기보다는 할머니가 손녀에게 하시는 말. 몇 개월 만에 하는 할마니와의 대화였다. 나를 친손녀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할머니 기억 속의 손녀는 내 또래였을까. 나의 서투른 식사수발을 받으신 후 같이 TV를 보던 때였다. 갑자기 할머니께서 너네 엄마가 나한테 참 잘해준다고 하셨다. 순간 당황해 아무말도 않는 내게 할머니께서는 너네 아빠도 잘 해주고, 엄마도 잘 해주고, 너도 할머니를 잘 해준다 하시면서 내 손을 쓰다듬으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대답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우리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고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친 손녀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고 있을 때에도 할머니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네가 키도 크고, 살도 빠지고 이뻐졌다, 참 이쁘다 하셨을 때에는 가슴 한 구석이 싸르르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들어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목소리 같아 뭉클하기도 했고, 네 엄마 아빠한테 잘 해야 한다는 말씀엔 가슴 아프기도 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가족들과 떨어져 이런 시설에서 옛 기억을 가지고 사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봉사자와 환자라는 선을 긋고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했던 내 자신이 창피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여기가 안방인데 다 커가지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자려고 아직까지 있냐, 빨리 네 방으로 건너가라 하시는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말에 편한 마음으로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진심과 웃음, 봉사의 또 다른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 계시는 자원봉사자 분들의 편안한 마음과 얼굴을 보면서 아, 부처님의 말씀 중 조건없이 베푼다는 보시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1분 스피치가 끝난 후 담당 선생님께서 나를 만나러 오셨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정말 힘든 직업인데 정말 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었다. 정말 하고 싶다고. 그 때 만약 선생님께서 ‘왜’냐고 물으셨다면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엇이 어떻고 어떠해서 이렇다 하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된 그 소중한 경험이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부족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고 대답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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