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암(孤雲庵)

    해인사 입구에서 서쪽으로 치원교를 건너서 머루 다래 넝쿨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산중턱에 조그마한 암자가 나선다. 이곳에 바로 고운선생께서 세웠다는 고운암이다. 고운암 바로 앞에 「고운선생구저은일지」라는 비석이 있다. 즉 고운선생께서 이 곳 가야산 홍류동에 들어오셔서 움막 초가를 짓고 세상을 멀리 하며 사시던 옛 집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현재 모습

 

 

 

 

홍류동(紅流洞)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홍류동 해인사입구에서 무릉교를 지나 절을 향해 약 2km 올라가면 고운선생의 유적이 가장 많은 홍류동이다.
    계곡의 석벽에는 홍류동(紅流洞)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바로 그옆 큰길가 석벽에 고운선생이 지은 7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고운최선생 둔세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아담한 정자 농산정이 있다.
    또 고운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학사당도 바로 농산정 건너편에 있다.



농산정,고운둔세비(籠山亭,孤雲遯世碑)

    가야산 홍류동에 있는 정자로서 그 옆에 고운둔세비가 세워져 있다.

 

홍류동석벽제시(紅流洞石壁題詩)

    가야면 치인리 홍류동 학농산정 건너편 석벽에 고운선생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미친 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 하네.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까?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쌌네. 번역: 이은상>
    이 시가 새겨진 돌을 후세 사람들은 치원대 혹은 제시석(題詩石)이라고 불렀다. 이 제시석은 세로 4척 8촌, 가로 2척의 각면에 글자 가로가 5촌 5푼의 초서로 세 줄이 새겨 있다.

 

가야서당(伽倻書堂)

    본 서당은 고운선생께서 세상을 등지고 독서로 시름하면서 세월을 탓하며 지내시던 곳으로 언제인가 하루아침에 갓과 신을 숲사이에 버린 체 훌쩍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나신 후론 오늘날까지 종적을 알 수 없다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홍류동학사당(紅流洞學士堂)

    홍류동 학사당은 농산정 건너편에 있으며 고운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향사하는 곳이다.



 

학사대(學士臺)

    경북 김천시 황금2동에 위치하며 김천역에서 남으로 약 2km 지점에 있다.
    김천향토사 제2장 풍토 전설「학사대에 고운선생이 이곳에 와서 인근 선비들과 교우 강학하던 곳으로 황금동 윗마을 산위의 넓은 곳을 학사대라 한다.」
    밀집된 인가 속에 지금까지 빈 공터만 남아 있는데 이곳 애들과 부녀자까지도 학사대를 모르는 이가 없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천연기념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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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수령이 250여 년 된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내 소재)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41호로 지정하였다.
 
  ‘학사대(學士臺)’는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해인사 대적광전 주변에 작은 정자를 짓고 선생이 역임한 한림학사(翰林學士, 왕의 자문 구실을 한 신라의 관직)란 벼슬 이름을 따 학사대라고 했으며, 여기서 선생이 가야금을 켜면 학이 날아와 고운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선생이 이곳에 지팡이를 꽂았는데 이 지팡이가 자라 전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 전나무는 최치원 선생이 심은 전이무의 손자뻘쯤 되는 나무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고 규모가 커서 천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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