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백공원/ 재구합천군 병술생 야유회

[道泉 최평열] 

 

 

 

 

 

 

 

 

 

 

부산 동백공원/ 재구합천군 병술생 야유회

[道泉 최평열]  

 

 

 

 

 

 

 

 

 

 

4. 재구합천병술회 10월 월례회 및 추계야유회

[도천 최평열]

수산과학관 

 

 

 

 

 

 

 

 

 

 

 

 

 

 

 

 

 

 

 

 

 

 

 

 

 

 

 

 

 

 

 

 

 

 

 

 

 

 

 

 

3. 재구합천병술회 10월 월례회 및 추계야유회

[도천 최평열]

해동용궁사 

 

 

 

 

 

 

 

 

 

 

 

 

 

 

 

 

 

 

 

 

 

 

 

 

 

 

 

 

 

 

 

 

 

 

 

 

 

 

 

 

 

 

 

 

 

 

 

 

 

 

 

 

 

 

 

 

 

 

 

 

 

 

 

 

 

 

 

 

 

 

 

 

 

 

 

 

 

 

2. 재구합천병술회 10월 월례회 및 추계야유회

[도천 최평열]

동백공원

 

 

 

 

 

 

 

 

 

 

 

 

 

 

 

 

 

 

 

 

 

 

 

 

 

 

 

 

 

 

 

 

 

 

 

 

 

 

 

 

 

 

 

 

 

 

 

 

 

 

 

 

 

 

 

 

 

 

 

 

 

 

 

 

 

  

 

 

 

 

 

 

 

 

 

 

 

 

 

 

 

 

 

 

 

 

 

 

 

 

 

 

 

 

 

 

 

 

 

 

 

 

 

 

 

 

 

 

 

 

재구합천병술회 10월 월례회 및 추계야유회

[도천 최평열]

청도 휴계소 아침식사 

 

 

 

 

 

 

 

5. 재구합천병술회 10월 월례회 및 추계야유회

[도천 최평열]

식사.휴식 

 

 

 

 

 

 

 

 

 

 

 

 

 

 

 

 

야로면 정대리 재수 친구 집 애쁜 꽃들

[도천 최평열]

 

 

  

 

 

  

 

 

 

 

  

 

 

 

 

 

 

 

 

 

 

 

 

 

 

 

 

 

 

 

 

 

 

 

 

 

 

 

 

 

 

 

 

 

 

행복하게 사세요

재구 합천군 향우 병술생 회 도천 최평열 입회 환영식 

 

 

 

 

 

 

 

 

 

 

 

 

 

 

 

 

 

 

 

 

 

 

 

노덕경 <귀향> 문예운동 2008. 봄. 97호--2--도천 최평열   

◀노덕경(동우건설 이사)

-1946년 경남 합천 출생.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금오공고· 금오공대· 상주대 등 공무원으로 30년간 근무.
-2006년 수필시대 `반잔’ 외 4개 작품으로 신인상 수상.
-대구수필사랑문학회 회원. 서울청하문학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저서 수필집 `물처럼 바람처럼(2003)’
-현재, 동우건설주식회사 이사.

 

 

노덕경 <귀향> 문예운동 2008. 봄. 97호

  • 글쓴이: 노덕경
  • 조회수 : 42
  • 08.03.07 21:33
http://cafe.daum.net/essaysarang/CIP0/965
<콩트>
귀향(歸鄕)
노덕경.dukroh@hanmail.net
광호에게는 김 과장이라는 고향후배가 있다. 작달막한 덩치에 다문(多聞)박식하고 무엇이던지 자신감에 찬 젊은이이다. 자신의 말로는 김알지 23대 손으로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 했다.
그런 김 과장이 광호가 근무하고 있는 낙동강 연안(沿岸)의 중소도시에 토목공사과장으로 내려왔다. 고향의 선후배인 둘은 물고기가 새물을 만나듯 서로 반가워했다.
김 과장이 맡은 공사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그래서 현장에서 집행하는 금액이 대단했다. 공사업자와 공사자재, 거래처 사장들이 편의를 봐달라며 찾는 일이 많아 김 과장은 가만히 있어도 술값과 떡고물이 저절로 떨어졌다.
하지만 김 과장은 돈도 모르는 총각이었다. 주머니에 ‘배추 잎’이 도톰하게 생긴 날이면 손이 근질근질했다. 참지 못하고 광호를 불려내어 호기를 부렸다.

“광호 성님! 지난번에 먹은 것 ’거시기‘ 묵으러 갑시더.”
“뭐! 말이고?”
“강변 식당에서 전골하고 ‘거시기’ 먹었더니, 아! 그 놈이 죽여줍디다.”
“성님! 아침에 발딱 일어나지 예.”
“예끼 이 사람아.”

김 과장은 평소에 어디를 가나 농담과 장난을 잘했다. 남자들은 쇳가루가 있으면 없던 배짱도 생기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자연 큰소리가 나왔다. 저녁 식사에 반주까지 곁들이면 기분이 좋아져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2차로 가자는 신호였다.
룸-샤롱에 가서 양주로 몇 순배 돌아가면 배가 훈훈해지면서 몸에 취기가 올랐다. 그러면 물먹은 솜처럼 되어 기분이 알딸딸해왔다. 간도 더욱 커졌다. 급기야 별의별 폭탄주가 모두 등장하고 왁자지껄한 술집만의 일들이 벌어졌다.
간혹 마담이 들어와 룸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단골을 만들기 위해 갖은 봉사와 아양으로 비위를 맞추었다. 또다시 가게에 찾아오도록 하는 저들의 속셈이었다. 그래서 손님을 비행기 태우고 기분이 ‘업’ 되어야 그 날 양주와 안주가 잘 팔리고 매상이 덩달아 올랐다.
취기가 오르면 ‘기타와 벤드’를 불러 18번이 돌아갔다. 노래하는 사람 이외는 피부의 상호 접촉과 애정의 교류를 위해 남녀가 안고 앞에 나가 부르스, 지르박, 탱고, 왈츠, 디스코, 허슬, 등 춤을 추었다.
촌놈이 부추기는 기분과 쭉쭉 빵빵 미녀들의 웃음과 거침없는 몸 대시(dash)에 어혈진 도깨비 개천 물마시듯 양주를 들이켜 그런 날이면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참 후에 갈증이 나서 눈을 떠보니 집이 아니었다. 옆에는 그의 파트너가 누워 있었다. 아내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겁(怯)이 나서 일어나려하니 그녀가 광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광호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숨결이 파열된 수도관 물줄기처럼 광호의 얼굴과 귀가에 뿜어지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반항 할 수가 없었다. 광호는 여인을 안고 어찌할 줄 모른 채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러자 그녀는 광호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가슴에 넣었다. 광호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고 혈압이 오르고 온몸에 전류가 흘렸다. 그녀의 풋풋한 머리에서 샴푸와 비누 냄새에 취해 버렸다. 잠시 후에 피아노에 심취하여 저음에서 고음으로 온몸이 땀으로 범벅 되도록 건반을 두드렸다.
다음날 아침 빨강장미 한 송이를 남기고 그녀는 말없이 떠났다. 여자들은 한곳에 오래있지 않는다. 두세 달 후에 나비가 꽃을 찾아서가 아니라, 요즘은 꽃이 나비를 찾아 그녀는 물 좋은 곳으로 간다며 신흥도시로 떠났다. 광호는 한 동안 몸살을 앓았다. 가슴속에 남아 있는 빨강 장미를 그리워했고 피가 용솟음치는 가슴을 삭히고, 그녀를 잊기에는 여러 날과 달이 필요했다.
김 과장과 광호는 맛있는 음식과 유흥, 젊음을 즐기기 위해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서 중소도시와 근교에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그 때 술과 가무의 세계를 조금구경한 셈이다.
어느 덧, 김 과장도 현장이 마무리되고 철새가 계절에 따라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듯, 또 다른 먹이사슬을 찾아서 다른 현장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구러 시간이 흘려 3년이 되었다. 광호의 형님에게서 먼 집안의 누님 되시는 분의 아들 결혼식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께 누님과 매형이 종씨라며 자주 의논하러 오고 별난 음식을 만들면 서로 나누어 먹고 잘 지낸 일족이고, 우리 모두 그 누님에게 축복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늦가을 모처럼 집안 어른과 이웃들 어릴 때 죽마고우 만난다는 기분으로 휘 바람을 불며 고향으로 향했다.
먼 집안 누님의 아들은 광호의 후배이다. 후배는 대기업 자동차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식 날 누님을 축하하기 위해 신부 석에 않아서 ‘엘리제’ 결혼행진곡을 들으며 ‘신랑 입장!’ 하니 신랑은 싱글벙글 거리며 씩씩하게 입장했다. 얼마 후에 ‘신부 입장!’하니 손잡고 신부가 입장하는데 광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그 장미꽃이 아닌가. 아뿔싸! 신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광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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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경 <빨리 빨리(조급문화)> 황강신문(5. 6일자)

  • 글쓴이: 노덕경
  • 조회수 : 35
  • 08.05.09 16:44
http://cafe.daum.net/essaysarang/CIP0/975
빨리 빨리(躁急 文化)
노덕경

쇠뿔은 단김에 빼야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질주를 소원한다. 물론 빨리하면 좋은 일도 있다. 구급차와 소방차는 빨리 출동해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일이다. 늦장출발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때가 있게 마련이다. 과일은 익을 만큼 익어야 제 맛이 들고 기능공도 완숙해야 제 능력을 발휘한다.
한국인의 냄비 근성을 탓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매사에 조바심과 신속을 원하는 게 지배적인가 보다. 그래서 남보다 뒤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차례를 지켜 줄서기보다는 새치기해서라도 남의 앞에 서야 직성이 풀린다. 운전을 할 경우에도 차례를 지키기 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추월이라도 해야 잘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추월로 인한 부작용이 크지만, 질주와 과속에 길들여져 있는 게 우리들 습성인가 싶다.
음식점에 들어서면 예약도 하지 않은 채 빨리 달라고 독촉한다. 음식이 나오면 먹는 것도 빨리 빨리 한다.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에는 큰 그릇에 보리밥이고 뭐고 한데 섞어 비벼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하던 때가 있었다. 남보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는 욕심이나 시간에 쫓기던 때 습성이 어느덧 몸에 배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먹는 것도 예술이라고까지 치부하는 시대가 아닌가. 하기야 군사문화로 본다면 훈련소에서의 식사시간은 5분가량이었다. 정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뚝딱해치워야 겨우 제 몫을 찾던 그런 특수한 경우는 그렇다하고 매사에 그리 속도감에 젖는 건 그리 좋을 일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장병이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라고 하니 그게 그저 생긴 병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라. 무엇이든지 된다 싶으면 벌떼처럼 몰려든다. 부동산이 조금 돈이 된다면 너도 나도 팔과 치마를 걷어붙이고 땅 투기를 하고, 아파트가 돈이 된다 싶으면 청약한다고 밤낮을 기다려 줄을 선다. 그 것뿐인가. 주식이 돈이 된다고 증권객장에서는 부추기고, 너도 나도 이에 ‘올인’하여 남의 빛까지 내어 투자한다. 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깡통구좌를 거래하거나 부도로 연결되어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개중에는 증권투자나 벤처기업과 같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빠른 정보로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한 때 한집 건너 오락실이 생겨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리 맞은 이웃 ‘광호’ 애비는 한방에 날리고 실성(失性)하기까지 했다. 모든 일 처리에 신중해야하련만 모두 모두 빨리 빨리다. 공사를 하려면 계획단계에서부터 충분히 검토하고 설계를 해야 한다. 발주자는 빨리 완공하려 서둘고, 시공자도 현장관리비가 적게 든다며 서둔다. 그러다 끝내 부실공사로 이어져 대형 참사로 빚어지기도 한다.
모든 법도 빨리 빨리 움직이도록 부추긴다. 자동차세도 집에 세워두면 세금이 아까워 본전 생각이 나서 길거리로 자꾸 몰고 다녀야 한다. 그러니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 값은 걱정하면서도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길거리는 차량홍수를 이룬다.
너남 없이 요즘 국가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청년실업자는 나날이 늘어간다. 얼마 전만 해도 경제를 살린다고 주 5일 일하고, 이틀은 소비하자했다. 주 5일근무제를 서둘러 도입했다. 중소기업에 돈까지 지원해준다며 독려했다. 노사를 함께 걱정해야 하는데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기업하기는 어렵고, 국제적으로 개방 압력의 파고에 저렴한 제품이 홍수같이 밀려오지, 그나마 비실비실 돌아가는 기업도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천천히 앞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매사 튼튼하게 계획하고 행함으로써 건실한 경제대국을 건설해야 한다. 그 길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요, 그 길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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