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경 <귀향> 문예운동 2008. 봄. 97호--2--도천 최평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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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경(동우건설 이사)
-1946년 경남 합천 출생.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금오공고· 금오공대· 상주대 등 공무원으로 30년간 근무. -2006년 수필시대 `반잔’ 외 4개 작품으로 신인상 수상. -대구수필사랑문학회 회원. 서울청하문학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저서 수필집 `물처럼 바람처럼(2003)’ -현재, 동우건설주식회사 이사. |
노덕경 <귀향> 문예운동 2008. 봄. 97호 |
<콩트> 귀향(歸鄕) 노덕경.dukroh@hanmail.net 광호에게는 김 과장이라는 고향후배가 있다. 작달막한 덩치에 다문(多聞)박식하고 무엇이던지 자신감에 찬 젊은이이다. 자신의 말로는 김알지 23대 손으로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 했다. 그런 김 과장이 광호가 근무하고 있는 낙동강 연안(沿岸)의 중소도시에 토목공사과장으로 내려왔다. 고향의 선후배인 둘은 물고기가 새물을 만나듯 서로 반가워했다. 김 과장이 맡은 공사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그래서 현장에서 집행하는 금액이 대단했다. 공사업자와 공사자재, 거래처 사장들이 편의를 봐달라며 찾는 일이 많아 김 과장은 가만히 있어도 술값과 떡고물이 저절로 떨어졌다. 하지만 김 과장은 돈도 모르는 총각이었다. 주머니에 ‘배추 잎’이 도톰하게 생긴 날이면 손이 근질근질했다. 참지 못하고 광호를 불려내어 호기를 부렸다.
“광호 성님! 지난번에 먹은 것 ’거시기‘ 묵으러 갑시더.” “뭐! 말이고?” “강변 식당에서 전골하고 ‘거시기’ 먹었더니, 아! 그 놈이 죽여줍디다.” “성님! 아침에 발딱 일어나지 예.” “예끼 이 사람아.”
김 과장은 평소에 어디를 가나 농담과 장난을 잘했다. 남자들은 쇳가루가 있으면 없던 배짱도 생기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자연 큰소리가 나왔다. 저녁 식사에 반주까지 곁들이면 기분이 좋아져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2차로 가자는 신호였다. 룸-샤롱에 가서 양주로 몇 순배 돌아가면 배가 훈훈해지면서 몸에 취기가 올랐다. 그러면 물먹은 솜처럼 되어 기분이 알딸딸해왔다. 간도 더욱 커졌다. 급기야 별의별 폭탄주가 모두 등장하고 왁자지껄한 술집만의 일들이 벌어졌다. 간혹 마담이 들어와 룸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단골을 만들기 위해 갖은 봉사와 아양으로 비위를 맞추었다. 또다시 가게에 찾아오도록 하는 저들의 속셈이었다. 그래서 손님을 비행기 태우고 기분이 ‘업’ 되어야 그 날 양주와 안주가 잘 팔리고 매상이 덩달아 올랐다. 취기가 오르면 ‘기타와 벤드’를 불러 18번이 돌아갔다. 노래하는 사람 이외는 피부의 상호 접촉과 애정의 교류를 위해 남녀가 안고 앞에 나가 부르스, 지르박, 탱고, 왈츠, 디스코, 허슬, 등 춤을 추었다. 촌놈이 부추기는 기분과 쭉쭉 빵빵 미녀들의 웃음과 거침없는 몸 대시(dash)에 어혈진 도깨비 개천 물마시듯 양주를 들이켜 그런 날이면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참 후에 갈증이 나서 눈을 떠보니 집이 아니었다. 옆에는 그의 파트너가 누워 있었다. 아내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겁(怯)이 나서 일어나려하니 그녀가 광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광호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숨결이 파열된 수도관 물줄기처럼 광호의 얼굴과 귀가에 뿜어지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반항 할 수가 없었다. 광호는 여인을 안고 어찌할 줄 모른 채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러자 그녀는 광호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가슴에 넣었다. 광호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고 혈압이 오르고 온몸에 전류가 흘렸다. 그녀의 풋풋한 머리에서 샴푸와 비누 냄새에 취해 버렸다. 잠시 후에 피아노에 심취하여 저음에서 고음으로 온몸이 땀으로 범벅 되도록 건반을 두드렸다. 다음날 아침 빨강장미 한 송이를 남기고 그녀는 말없이 떠났다. 여자들은 한곳에 오래있지 않는다. 두세 달 후에 나비가 꽃을 찾아서가 아니라, 요즘은 꽃이 나비를 찾아 그녀는 물 좋은 곳으로 간다며 신흥도시로 떠났다. 광호는 한 동안 몸살을 앓았다. 가슴속에 남아 있는 빨강 장미를 그리워했고 피가 용솟음치는 가슴을 삭히고, 그녀를 잊기에는 여러 날과 달이 필요했다. 김 과장과 광호는 맛있는 음식과 유흥, 젊음을 즐기기 위해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서 중소도시와 근교에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그 때 술과 가무의 세계를 조금구경한 셈이다. 어느 덧, 김 과장도 현장이 마무리되고 철새가 계절에 따라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듯, 또 다른 먹이사슬을 찾아서 다른 현장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구러 시간이 흘려 3년이 되었다. 광호의 형님에게서 먼 집안의 누님 되시는 분의 아들 결혼식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께 누님과 매형이 종씨라며 자주 의논하러 오고 별난 음식을 만들면 서로 나누어 먹고 잘 지낸 일족이고, 우리 모두 그 누님에게 축복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늦가을 모처럼 집안 어른과 이웃들 어릴 때 죽마고우 만난다는 기분으로 휘 바람을 불며 고향으로 향했다. 먼 집안 누님의 아들은 광호의 후배이다. 후배는 대기업 자동차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식 날 누님을 축하하기 위해 신부 석에 않아서 ‘엘리제’ 결혼행진곡을 들으며 ‘신랑 입장!’ 하니 신랑은 싱글벙글 거리며 씩씩하게 입장했다. 얼마 후에 ‘신부 입장!’하니 손잡고 신부가 입장하는데 광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그 장미꽃이 아닌가. 아뿔싸! 신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광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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